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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기자의뒤적뒤적<끝>]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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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365일

강상구 지음, 브리즈

육아휴직을 내고 첫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집에서 살림을 한 '주부(主夫)'의 일기입니다. 말하자면 육아일기인데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닙니다.

한밤중 3~4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는데 이 부부, 전날 사다 놓은 등심을 구워 먹습니다. 아이 낳을 힘을 비축하기 위해 오전 2시 반에 배를 움켜쥐고 등심을 먹었다니 엽기 수준입니다. 바야흐로 육아휴직을 낸 남편. 주위에선 "남자가 옆에 있어봐야 도움이 안 돼" "이야~ 나도 좀 푹 쉬었으면 좋겠다" 등의 핀잔을 했다지요. 그런데 지은이는 8일 만에 잠 한 번 푹 자보는 게 소원인 소박한(?) 희망을 품게 됩니다.

하루 20회 기저귀를 갈고, 기저귀 가는데 오줌을 갈겨서 방금 빨아 말렸던 이불이며 각종 깔개 등을 빨고, 젖 먹고 울고, 트림시켜 주고, 달래 주고….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새벽 3시도 되고 4시도 되었다니 당연하죠. 게다가 부엌 싱크대가 낮아 '업무상 재해'를 당합니다. 허리 통증입니다. 그제야 "허리가 휠 정도로 일했다"던 부모님 말씀을 실감하기도 합니다.

무더위 속에 5㎏이 넘는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느라 아내가 얼굴이 벌게진 채 손목이 끊어질 것 같다고 하자 부채질하랴 손목 주무르랴 정신없는 와중에도 '젖꼭지가 손가락 끝에 달렸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네요. 공을 차거나 심부름하러 다니는 이웃집 아이를 보며 부러워하다가 "아이가 우선 목부터 가눠야지"하는 자각을 하는가 하면 아이가 왜, 얼마나 피곤하지 알아 보려고 누워서 버둥대 보기도 하는 초보 아빠,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백미는 머리통이 별난 지은이가 아이의 머리 모양을 두고 고심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운동권이었던 대학생 때 "불의에 맞서 죽을 때까지 단식할 수는 있지만 혹시 누가 삭발하자고 하면 어쩌지?"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는 대목입니다.

웃긴 잘 웃었지만 이 책, 한편으론 부끄럽게 만들더군요. 아이 둘을 키웠는데 기여한 바가 별로 없으니 말입니다.

병아리 기자 시절, 밤 늦게 집에 와 곯아 떨어졌다가 아침에 눈을 떠보면 아내의 자리는 비어 있곤 했습니다. 병원에 갔던 거죠. 아이 낳으러. 그렇게 두 아이를 얻고도 기저귀를 갈아 주거나, 밤중에 일어나 아이를 어른 기억도 없는데 아이들은 쑥쑥 자라더군요. 정확히는 키우는 걸 본 셈인데 책에는 수유 쿠션이며, 이스트 감염이며 몰랐던 게 너무 많았습니다.

지은이는 체험을 소개하는 강연도 다니는데 이를 듣고 부부 싸움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러니 불온한 책인 셈입니다. 그러나 '두고 두고 아껴 읽어야지'하는 생각에, 채 읽지도 않고 기사를 쓸 정도로 재미도 있고 생각거리도 많습니다. 단 부부가 읽을 때는 사전에 충분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할 겁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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