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돋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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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비감을 자아내는 제목의 영화『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는 새우잡이 무동력선, 일명 멍텅구리배 선원들의 고된 삶을 사실에 충실해 그린 영화다.
광주문제를 다룬『오! 꿈의 나라」를 연출한 홍기선 감독이 오랜 준비 끝에 만든 첫「제도권」영화이기도 하다.
바다라는 삭막하고 단절된 공간에서 뿌리 없이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을 리얼하면서도 잔잔하게 그려내 우리 시대의 소외군상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원명희씨의 소설『먹이 사슬』을 기둥 줄거리로 하고 태풍 셀마에 의해 수장된 선원들의 비극을 보태 영화를 구성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올 봄까지 겨울을 넘기며 전남 앞 바다 실제 새우잡이 조업현장에서 촬영, 영화의 70%이상이 선상과 그 주변 장면으로 채워져 사실감을 높이고 있다.
선원 조달 전문 폭력배들에 이끌려 새우잡이 배를 탄 절름발이 떠돌이청년이 감시와 구타, 굶주림을 견뎌내며 동료 선원들을 이끌고 폭풍우 전야에 탈출을 감행한다는게 줄거리다.
선주·사공(선원들의 탈출을 감시하고 조업을 독려하는 선장)까지도 보잘 것 없는 먹이 때문에 자신의 도덕성이 파괴당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희생자로 그린게 이 영화의 특색이다.
홍 감독은『제작비·기술이 부족해 폭풍우 장면 등이 그럴듯하게 살아나지 못했다』며『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이 같은 하늘아래 사는 소외계층과 만나는 계기가 됐으면』하고 바랐다.
연극배우 조재현이 주연을 맡았다.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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