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깨끗한 대선캠페인(국운걸린 공명선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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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마구 쏟아지는 「공약성 공약」/정책대결은 뒷전 가는 곳마다 선심/「불량상품」가려낼 장치 시급
대통령선거가 정책대결 위주가 돼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오랜 소망이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실천된 경험이 없다. 이번에도 각 당 후보들은 「신한국 창조」(김영삼민자),「대화합시대 개막」(김대중민주),「경제재건」(정주영국민) 등 다양한 집권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지역 편가르기·흑색선전·상호비방과 금권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김영삼­김대중후보간 최후의 결전,정주영후보의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이라는 절대절명의 상황이 조성되면서 정책대결은 더욱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이다.
부산·경남과 호남 유권자들의 80% 이상이 자신을 찍을 것을 전제로 득표전략을 짜는 후보들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정책논쟁의 당위성을 언급하는 것은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각 후보가 내놓은 공약을 보면 차별성·비교우위를 찾기 힘들뿐 아니라 상호모방의 냄새가 물씬 난다.
민자당의 77개,민주당의 1백개,국민당의 50개 공약은 인기용·선심성 사업이 대부분이다.
중소기업 활성화·서민주택난 해소·입시지옥 해결은 3당 모두 실천가능성을 얕잡아 보고 있고 금융실명제·통일정책·국가보안법 개정문제에선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정책기조 변화와 개혁의 수위차를 느끼기 어렵다.
유권자들의 기호에 맞을성 싶으면 앞뒤 안재고 몽땅 진열해 놓고 「순간의 선택」을 유혹하는 정당의 속임수에 유권자들이 속지 않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아가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포장한 불량상품을 가려내 표로써 응징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만큼은 집권공약의 구체성과 후보들의 정책소화 능력을 따져 보고 표를 찍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유권자들에게 검증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아니 유권자들이 적극 나서 검증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후보 및 정당의 실천의지와 소화정도를 따지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각 학술·직능단체가 관련분야의 토론을 주선할 수도 있고,각 후보와 연설원이 선거법에 따라 TV·라디오를 통해 3차례씩 토론회를 열수도 있다. 「TV정책토론시대」의 개막은 후보들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아무리 각 정당의 공약이 차별성을 찾기 힘들지라도 미묘한 쟁점에 대해 후보나 정책 관계자가 TV·신문을 통해 그나마 검증절차를 거치는 것은 의미있는 진전을 가져다줄 것이다.
후보나 정책관계자의 공방을 통해 어느 것이 1회용인지,어느 것이 인기용인지,누가 베꼈는지를 드러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제3자인 사회단체나 언론이 실천가능성 여부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도 바람직한 검증방법중 하나다. 예컨대 지난 총선때 국민당이 내건 아파트 반값공급이 투표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이번에 또 써먹어도 괜찮은 공약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책논쟁이 자리잡지 못하면 그 공백은 여의도광장의 세과시 열풍과 87년 유세장을 더렵혔던 흑색유인물이 차지할 수 밖에 없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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