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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우리 민들레' 두둥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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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Canon EOS-1Ds MarkⅡ 100mm f16 1/250초 ISO 100 스트로보 사용

실바람에도 살랑이던 민들레 하얀 솜방망이가 건들바람에 하릴없이 툭 터집니다. 앞 다투듯 허공으로 오른 홀씨(?)는 어디로 떠날까요? 그저 바람 타고 두둥실 떠돌다 내려앉는 곳이 그들의 삶터겠죠. 개중 어떤 놈은 얼마 날지 못해 실 같은 거미줄에 걸려 대롱거립니다. 또 다른 놈은 잡초 줄기 끝에 내려앉아 바르르 떱니다. 먼 하늘로 솟구쳐 오른 놈들은 어디든 날아가 이듬해 봄이면 샛노란 꽃을 피울 겁니다. 산비탈의 밭두렁도 좋고 강가의 돌 틈도 상관없습니다. 심지어 도시의 보도블록 틈새, 빌딩 옥상에도 뿌리내릴 곳만 있다면 꽃이 되어 또 씨앗을 퍼트릴 겁니다.

어느 땐가부터 민들레가 흔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릴 적 본 작고 소박한 꽃이 아닌, 꽤나 탐스러운 모양새입니다. 더구나 계절과 상관없이 눈에 띕니다. 따뜻한 남쪽에선 2월에도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시도 때도 없이 피는 이놈들은 다름 아닌 서양민들레입니다.

식물분류학자인 현진오 박사에게 민들레 이야기를 청했습니다. "이제 우리 땅에서 서양민들레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무인도는 물론 높은 산 1300m 고지까지도 터를 잡았습니다. 이놈들은 뿌리가 잘려도 다시 살아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합니다. 더욱이 벌과 나비가 수분을 해줘야만 생식이 가능한 토종민들레와 달리 서양민들레는 처녀생식도 가능합니다. 생장 환경이 나쁘면 밑씨가 바로 씨가 되어 버리죠. 처녀가 애 배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서울 같이 척박한 도심에서도 살아남는 것들은 전부 서양민들레입니다.

이젠 보기조차 쉽지 않지만 우리 토종은 민들레, 산민들레, 흰민들레가 있어요. 쉽게 구분하려면 모인 꽃싸개의 바깥 조각(외총포편)을 살펴야 합니다. 뒤로 젖혀지지 않고 꽃을 받치고 선 놈이 토종이고 발랑 젖혀진 놈이 서양 것입니다. 그리고 '민들레 홀씨'란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홀씨는 무성생식을 하는 양치류나 이끼류의 포자를 일컫는 것이니 그냥 '씨'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현 박사의 설명을 듣고 인터넷 이미지 검색을 해봤습니다. 수천여 개의 이미지가 뜹니다. 그만큼 민들레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방증이겠죠. 하지만, 대부분 '홀씨'라 쓸 뿐만 아니라 토종민들레가 아니었습니다. 그 소박하던 '우리 민들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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