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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탐방] 6. 대중문화 평론 '가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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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문화 평론 '가슴'(☞ 바로가기)

지난주 난생 처음으로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 첫 방문지인 상하이에서 이 '서울 촌놈'을 위해 저녁을 먹은 후 현지 분들이 노래방으로 데리고 갔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가 했는데 그게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그들은 영어를 못하고 필자는 중국어를 못한다- 노래의 '코드'도 어긋났기 때문이다.

한류(韓流) 열풍이라더니 그들은 안재욱의 신곡을 중국어로 열심히 부른다. 노래도 모르고 중국어도 모르는 '서울 아저씨'들은 멀뚱멀뚱 앉아서 박수로 장단이나 맞추는 수밖에. 아저씨들이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한국어로 열창하면 이번엔 그들이 멀뚱멀뚱이니 도대체 흥이 날 리가 없다.

대중문화는 상대적이다. 물론 올해의 뉴스메이커라는 '효리'처럼 나이를 초월해 관심을 끄는 스타도 있다. 그러나 '아저씨'들이 '뽕짝'만 듣는 것을 대부분의 10대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락커들의 공연 현장에서 신들린 것처럼 헤드뱅잉하는 10대 소녀 팬들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대중음악에 대해 누가 좀 친절히 정리해주면 좋을텐데 하는 마음으로 찾아 든 사이트가 '가슴(http://www.gaseum.com/index.asp)'이다. 대중음악/문화 비평 전문 월간 웹진으로 1999년 11월 첫 호를 낸 뒤 이듬해 3월까지 격주로 발행했다. 그 후 2년간 휴간을 거쳐 지난 4월 재창간했다. 발행, 웹마스터, 마케팅을 도맡은 편집장 박준흠씨가 '지금, 여기, 우리의 가슴 열기'를 모토로 꾸려나가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눈치를 챘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댄스가수들 소개와는 거리가 멀다.

박준흠 편집장은 재창간을 앞두고 올린 글에서 "가슴을 만든 첫 번째 이유는 제가 여기서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제가 글을 쓸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으로 살겠다면, 애초에 다니던 연구소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돈벌이의 전망이 어두운 가슴을 운영하는 것보다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뮤지션을 축으로 기자, 평론가, 매니저, 엔지니어, 레이블 운영자, 유통 담당자, 정책 개발자 등 음악산업 내의 전반적인 인력들이 조화롭고 공평하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획득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슴'에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최근호가 "쉽게쉽게 혁명과 변혁과 진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5인 미만 작업장에서 노조운동이 일어나는 거 봤나?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말하자면 난 주위에 있는 그런 벙어리들, 절름발이들에 대해서 드러내고 싶은 거다"라고 말하는 4인조 밴드 '허클베리 핀'의 인터뷰로 시작하는 식이다.

또 "이 코너는 영화와 만화를 중심으로 한 각종 대중문화 경험을 소재로 M씨가 횡설수설 신변잡기 수필 성격의 매우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감상문을 연재합니다. 주의 : 이 코너에 연재되는 글들은 읽는 분을 위해 기획되지 않습니다"라는 소개글로 시작하는 '고장난 프리즘'에서는 이번호에 '당신들의 크리스마스를 위한 캐롤'이라는 글을 실었다. 여기서 산타클로스는 "산타할아버지는 정말로 알고 계신대. 누가 가장 잘 길들여진 개인지. 막대기를 물어오며 자랑스레 과자를 기다리는 X새끼처럼 산타할아버지 앞에 세상에 길들여진 너를 자랑해야지. 오늘밤에 다녀 가신대. 산탄지 사탄인지… 하여튼 그 늙은이 오늘밤에 다녀 가신대"로 비틀어진다.

그리고는 "기다렸다 잡아서 혼을 내주자, 자지 말고 잡아서 끝장 내주자. 커다란 양말에 넣어서 불타는 굴뚝에 넣어 버리자. 우리가 사는 이곳의 아픔, 이곳을 사는 우리의 슬픔. 쥐뿔도 모르며 웃음만 강요하는 산타를 죽여버리자. 따뜻한 털옷에 털모자, 장갑에 부츠까지 신고 헐벗은 아이에겐 슬픈 듯 눈물보이며 얇은 내복 하나 선물하겠지. 그리곤, 외쳐대겠지. 메리 크리스마스~ 살찐 돼지처럼 축처진 배와 얼굴까지 통통하게 물이 오른 산타클로스. 그렇게 웃으며 외쳐대겠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이어진다.

이쯤되면 오는 31일 발표하는 '가슴 어워드 2003'에 과연 어떤 인물, 음반이 선정될지 궁금해진다. 지난해는 '언니네 이발관'의 '꿈의 팝송'과 장필순 6집이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됐다.

그렇다고 '가슴'의 모든 글이 '고장난 프리즘'처럼 과격한 것은 아니다. 새앨범 소개 코너에서는 일본인 밴드로 잘 알려진 '곱창전골'의 신곡을 들을 수 있고 3인조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첫 앨범도 만날 수 있다. 지난 기사를 찾아보면 한대수씨의 인터뷰나 밥 말리 트리뷰트 앨범 등 흥미있는 글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최근 앨범에 관심이 있다면 매일 업데이트 되는 추천음반과 그에 대한 독자마당의 반응을 살펴보면 된다.

"혁명을 하는 심정으로 매체를 운영한다. 비록 체 게바라처럼 '밀림 속의 혁명가'는 아니지만, '도심 속의 몽상가' 그 이상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박준흠 편집장의 시도가 나름대로의 결실을 맺기를 기원한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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