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일결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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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어떻게 하니?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누굴 탓하겠니?』
요즘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거린다. 둘째이자 막내의 혼삿날을 받아서 식장을 예약했는데, 절친한 사람들 중 4명이 같은 날 결혼식을 한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알게된 것은 둘째의 친구다. 둘째와 그 친구는 국민학교·중학교 동창이고, 엄마들끼리도 30여년을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서로가 하객으로 참석하지 못함만을 서운해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친정 집 조카가 같은 날임을 알게되었다. 둘째 결혼식에 20여명이나 되는 식솔을 거느리고 대거 서울 나들이를 할 것으로 믿고 있던 나는 아연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둘째와 대학동창이며 같은 클럽회원으로 단짝인 친구가 또 같은 날이라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남편의 친구 분도 같은 날 딸을 시집보낸다는 전갈이 왔다. 12월6일 이날은 어떤 날이기에 이렇게 야단들인가!
원래 혼사 일은 생리일 때문에 신부측에서 택일하게 되어있는데 길일만을 택하다보니 같은 날 몰리게 되어 서로가 하객으로 참석을 할 수도 없고 교통난 속에 하객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하며 식당이며 신혼여행지도 무척 혼잡하다.
언제였던가. 뱀띠 해에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영리하다 하여 배부른 여인들이 눈에 많이 띄더니 또 백말띠라면서 임신중절이 유행처럼 번졌던 때도 있었다. 뱀띠 생은 심한 입시지옥을 치러야할 테고 백말띠 해에 출생한 아이는 대학 문이 조금 더 넓어지지 않을까?
큰아이는 88년 국회의원선거일이 결혼식 날이었는데 평일이라면서 모든 비용을 50%나 깎아 준데다 화창한 봄날 숲 속에 위치한 식장에서 우리 한집만이 결혼식을 하게되어 주차장이며 식당을 하루종일 쓸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동창회도 겸할 수 있었는데…. 둘째 결혼식 날 썰렁할 식장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마음이 춥다. <서울 성북구 정릉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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