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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원강의 『봉래선도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원강의 자는 문도이며 강도, 즉 지금의 강소성 양주출신이다.
양자강과 대운하의 교차지점에 위치한 양주는 청초부터 교통과 상업의 요지로 각광을 받아 신흥 상인들의 특수한 문화가 형성된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계층의 취향에 부응하여 종래의 전통적인 문화와 취향과는 다른, 다양한 주제와 양식을 보이는 그림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직업화가들에 의한 장식효과가 두드러진 그립들이 많이 그려졌는데 원강의 『봉래선도도』는 그 좋은 예다.
봉래산은 실제로 있는 산이 아니라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도교의 신선사상의 산물이다.
강소성의 동쪽바다 어느 곳에 있다고 믿어진 이 섬에는 영지가 사방에 퍼져 있으며 신선들이 옥으로 된 바위 샘에서 흘러나오는 불로장생 수를 마시며 화려한 궁전에서 산다고 한다. 과연 이 그림에도 굽이치는 파도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산이있고, 도화 꽃이 만발한 안개 어린 숲속에는 넓은 대(테라스)에 둘러싸인 환상적인 궁궐이 보인다.
원강은 송대의 산수화를 배우고 또한 계화(자를 사용하여 선을 그어 건물이나 다른 기물들을 묘사하는 그림)에 뛰어나 청대의 제1인자가 되었다고 한다.
계화라는 용어는 배송때 생겨난 것으로 보이지만 그 기법은 당대부터 발달되기 시작하여 원말(14세기 후반)에 건축양식이 복잡해지는 것과 더불어 큰 진전을 보였다.
이 그림에서는 복잡한 지붕의 구조와 여러층으로 된 대리석 테라스와 난간, 그리고 열린 문을 통해서 들여다보이는 실내등이 신기할 만큼 완벽한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원강의 생졸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청조의 옹정연간(1723∼l735)에 궁정화가로 봉직했다는 기록과 강희37년(1698)기년작이 알려져 있어 이 『봉래선도도』의 무자년을 1708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성미<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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