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기 속죄양보다 「정치적 영향력」 확보겨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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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재벌총수 정치참여의 배경과 반응/6공 들어 「피해의식」 확산/대우 김 회장 「울타리」 확보 백방으로 노력/재계 “기업이미지 나빠진다” 부정적 반응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이 일단 대선출마 포기쪽으로 가닥을 잡아감에 따라 정주영국민당대표와 함께 재벌총수 2명이 대권에 도전하는 희귀한 사태가 빚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김 회장의 정치에 대한 참여가능성까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며 항간에는 차기를 바라본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김 회장의 정치적인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참정권이 보장 돼있는 만큼 재벌총수라고 해서 정치참여를 기피할 필요는 없으나 우리나라의 재벌이 해방이후 얼마간은 기형적인 경제성작속에 기업의 한 형태로 자리잡은 사실에 비춰볼때 새삼스레 「한국적인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성공적이었던 기업인생을 뒤로한 재벌의 정치참여에 대해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일반인들은 재벌을 정치권력과 한통속으로 여기지만 기업인들은 오히려 정치자금 등의 부담을 지면서도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재계의 총본산이라고 일컬어지는 전경련이 5·16군사혁명직후 「부도덕한」 기업인들의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자의반 타의반 만들어졌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주들은 기업육성을 통해 사회에 나름대로 기여했다고 여기고 있으나 정권변화기마다 오히려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속죄양이 되는 것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6공의 정치상황 변화도 재벌의 정치참여를 부추기는데 큰몫을 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5·8부동산 강제매각조치 등 6공의 「재벌밀어붙이기」로 불만이 커진데다 현대사례에서 보듯 정부도 어쩌지 못할 만큼 영향력을 확보하게된 재벌기업이 민주화추세와 맞물려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영향력 확보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김 회장의 경우 대우그룹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정치에 참여하려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A그룹의 정보담당자는 『김 회장은 다음정부에서도 대우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북방카드 등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해 왔다』고 지적하고 『김 회장은 이번 선거가 아니라 차기를 노리는 것으로 보이며 연말의 대선에서 3등만해도 다음정권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보,대우의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대우가 정치적인 울타리를 필요로 하는 이유로 대우의 경영이 다른 경쟁기업에 비해 취약해 지속적인 금융지원이 필요한 점을 꼽았다. 그러나 이같은 이유만으로 재벌총수가 나란히 대권에 도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보호를 위해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려한다면 국회의원 등 로비집단을 이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대권에까지 도전하는 것은 개인의 「권력의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재벌기업의 한 전문경영인은 『재벌총수들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소왕국내에서 「권력의 맛」을 충분히 느껴왔으며 여기에 정부의 「재벌푸시」에 따른 위기감과 정치적 야망이 얽혀 정치일선에 나서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정·김씨가 정치에 참여하는 속뜻이 어떻든 이에 대한 재계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S그룹과 L그룹 등은 김 회장의 대권도전설이 알려진후 정치와의 「불가근 불가원」원칙을 재확인했으며 전경련의 관계자는 『재계가 공동으로 할일이 많은데 재벌총수의 정치참여로 기업이미지가 나빠져 사업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려대 이필상교수는 『어차피 정치자금을 뺏길바에야 정치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권력을 갖는게 돌파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지만 재벌총수가 대권도전에 나서는 것을 보면 경제가 정치논리에 압도되고 있는 것도 막바지단계에 들어선 느낌』이라며 『재벌의 정치참여를 보는 국민의 눈은 불안하며 지난 24일의 주가하락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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