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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국가'로 가야 할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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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의 많은 학자와 정책 입안자는 6자회담을 어떻게 동북아의 자신감과 협력을 고취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항구적 제도로 바꿀지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선 보다 폭넓은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에 더 관심이 많다.

이 다자협력체제의 구축 과정은 다음 네 부문에서 심한 의견 충돌을 빚고 있다.

첫째, 어떤 의제와 규범을 따라야 할지다. '내정 불간섭'이라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의 원칙을 따를 것인가. 이는 중국이 지지하고 있다. 아니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유럽연합(EU)처럼 민주.법치.인권에 대한 공통의 가치를 정립할 것인가. 일본은 요즘 들어 부쩍 이 '가치추구적' 통합을 강조한다. 아세안도 최근 보편적 민주주의와 인권을 추구한다는 헌장 초안을 만들었다.

둘째, 어느 국가가 아시아에 속하느냐는 문제다. 중국은 미국이 불참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나 '아세안+3(한국.중국.일본)'에 집중하려 한다. 아시아 공동체가 개방적이고 범태평양적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미국을 뺀 동아시아 국가로 한정돼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셋째, 어떤 식의 경제협력이 더 효과적인지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편으론 아세안에 중국만 더한 '아세안+1 자유무역협정(FTA) 모델'에 기반한 경제 통합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다. 다른 쪽에선 관세나 무역장벽에서 낮은 수준의 목표를 추구하는 '아세안+3'가 더 효율적이란 주장도 있다. 미국.호주, 또는 한.미 FTA와 같은 높은 수준의 경제적 통합, 도하 라운드의 무역 자유화 수준을 역내에서 추구하자는 제안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에서 안보를 누가 제공하느냐 하는 문제다. 동아시아 정상회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또는 '아세안+3'와 같은 체제가 미국과 아시아 각국의 양자 동맹만큼 안보에 버팀목이 돼 줄 수 있을 것인가. APEC이나 다른 다자 지역주의적 틀 없이 미국과의 양자 동맹만으로도 충분한가. 아니면 6자회담이나 지진해일(쓰나미) 구호활동 때처럼 이해 당사국들만 모아 따로 채널을 구성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가.

이 네 가지 문제를 푸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만약 한국 정부가 수많은 아시아 지역주의 개념 사이에서 '균형자'의 역할을 하려고 든다면 한국은 아무런 논의에도 끼어들지 못할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중국과 미국 정부는 앞다퉈 미.중.일 삼각 정상회담 정기화를 제안하고 있다. 중.일 어느 쪽도 한국의 '균형자' 역할을 원치 않는다. 신경 쓰는 것은 미국과의 3각 관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을 빼고 미국.일본.호주.인도가 4자 회담을 열자고 제안한다. 한국이 추구하는 '균형자' 개념을 믿지 않아서다. 한국이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국가들의 원칙을 따르는 데 100% 충실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한국을 제외하는 한 이유다.

지역화 과정에서 한국이 추구해야 할 역할은 '균형자'가 아닌 '허브'다. 한국은 막 떠오르는 여러 다자주의 기구들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이들 기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미국.일본.호주.인도 4자회담 아이디어는 쓰나미 구호 그룹을 근간으로 했지만, 한국.인도네시아를 포함하면 훨씬 강해질 수 있다. 아시아 대륙과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고, 장래 중국의 참여를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아시아에서 무역 자유화에 대한 컨센서스를 이끌어 내는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미 FTA가 '아세안+3', 그리고 범태평양 무역자유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허브가 되려면 미국과의 동맹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아시아 통합에 속속들이 관여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리=최지영 기자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보좌관

정리=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