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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유행」과 청소년 문화/정규웅(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얼마전 TV방송에서 강남의 번화한 유흥가를 스케치하는데 등장한 몇몇 10대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목소리로만 가까스로 남자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그들은 한결같이 여성적인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블라우스같은 상의를 입은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고,치렁치렁한 머리에 귀걸이·목걸이 등 여성용 장식품들을 매단 모습은 영락없는 여자였다. 목소리까지 여자흉내를 내는 청소년도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TV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바로 며칠전의 일이었다. 밤늦은 시간에 한참 택시를 기다리다가 두 젊은 여성이 내리는 빈 택시를 겨우 얻어탈 수 있었는데 택시에 오르자마자 50세 전후로 보이는 기사는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투덜대면서 연방 혀를 찼다. 까닭을 물으니 저만큼 걸어가는 두 여성을 가리키며 하는 대답이었는데 이랬다.
『이거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돼가는 겁니까. 쟤들 여자처럼 보이죠,그중 하나는 남자랍니다. 글쎄,바지 입은 애 말입니다. 귀걸이에 팔찌까지 하고선…,여자 옷입고 다니는 것까지는 좋아요. 택시안에서 낄낄거리며 온갖 흉한 짓들을 다하더란 말입니다. 아직 스무살도 안돼 보이지 않습디까. 참다못해 한마디 했더니 미니스커트 입은 저 여자애가 웬 참견이냐며 오히려 바락바락 대들지 뭡니까. 나도 저만한 자식들을 키우지만 도대체 저런 아이들 부모는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지 궁금해요.』
남성 동성연애자들 사이에서 여자 역할을 맡은 쪽이 여장을 하는 일은 동성연애가 시작되면서부터의 일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20세도 채 안된 「멀쩡한」 청소년들이 여자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오늘날의 세태는 아무래도 옛삿일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일치된 성이란 뜻으로 쓰이는 「유니섹스」라는 표현은 본래 구미의 패션계에서 시작된 말이었다. 남성의 의상을 여성의 것과 비슷하게,혹은 여성의 의상을 남성의 것과 비슷하게 디자인한 패션을 유니섹스스타일이라고 했다. 그것이 차츰 양성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의 일반적 의미로 쓰이게된 것이다.
○사회 가치관도 큰 문제
프로이트 심리학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잠재의식 속에서 한번쯤 다른 성이 돼보고자 하는 욕구를 지녔다고 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성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하게 되는 10대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그런 욕구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의상에서의 유니섹스 스타일은 이를테면 그같은 인간심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러한 잠재적 욕구를 상업적으로 이용해온 것은 비단 패션계 뿐만 아니다. 유니섹스 패션과 비슷한 배경에서 출발하지만 젊은층의 대중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대중예술인들은 늘 유니섹스와 관련한 유행의 선두주자 역할을 감당해 왔다. 보이 조지나 마이클 잭슨 같은 팝 가수들이 전세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들의 특이한 재능이 바탕을 이루지만 그 폭발적 인기의 배경에는 인종과 성을 초월한 모습으로 대중앞에 등장하는 수법도 한몫 거들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중예술인들이 대중의,특히 청소년들의 유행심리를 자극하기 시작한 것은 대중예술의 출현과 궤를 같이 한다. 그들이 대중을 위해,혹은 대중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들에 의해 급속하게 전파되는 유행이 과연 상식적이며 건전한 바탕에서 출발한 것인가에 있다. 그것은 물론 그들이 활동하고 있는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과도 연관된다.
극히 일부분의 청소년들에게 국한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요즘 우리 청소년들의 기이한 모습들이 외국의 경우처럼 대중예술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그러한 현상이 그대로 방치돼도 좋은 것인지 진지하게 검토돼야 한다.
○대중예술인 각성 필요
TV화면들은 어제도 오늘도 머리를 어깨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이상한 모자에 괴상한 옷을 입고,온갖 장식물들을 주렁주렁 매단 대중예술인들의 요란한 몸짓을 열심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차림새들은 며칠후면 어김없이 거리에도 등장한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이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울 공연때 불상사가 빚어진 것은 대중적 인기를 반영한 것이지만 또다른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대중예술인들에 의해 전파된 유행과,그것이 주축을 이룬 우리 청소년문화의 현주소를 실감케 하는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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