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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다시 뮤지컬 무대선 혼혈가수 소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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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가수 소냐(23)의 또 다른 직업은 뮤지컬 배우다. 뛰어난 노래 실력을 바탕으로 최근 3년 동안 '페임''렌트'에서 주인공을 거머쥐었다. '페임'에선 스타를 꿈꾸다 마약중독자로 전락한 카르멘 역을, '렌트'에선 에이즈에 걸린 스트립걸 미미 역을 맡아 노래와 연기 등 모든 면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제가 워낙 아픔이 많아 그런지 배역이 잘 맞았습니다. 무대 위에 서면 참 편안했어요. 하지만 무대만 내려오면 점점 더 우울해지는 바람에 괴로운 나날을 보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냐는 다시 뮤지컬 무대로 돌아왔다. 그것도 자신이 처음 출연했던 뮤지컬 '페임'(올림픽공원 텐트극장. 02-417-6272)을 통해서다. "3년 전엔 배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했던 역할이에요. 제대로 다시 한번 해보고 싶던 차에 기회가 와서 확 잡았죠."

소냐는 무척 밝아보였다. 얼마 전 4집 앨범 녹음을 마쳤는데 이번엔 밝은 풍의 노래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이번 뮤지컬도 "밝은 마음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사이 사랑을 했을까. 성숙해졌기 때문일까. 궁금했다. 뜻밖에 그는 "아버지를 만나서…"라며 말을 꺼냈다.

그가 가수로 데뷔하던 시절, 노래보다 개인사가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본명 김손희.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인 흑인.스페인계 혼혈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손희라는 본명 대신 어머니는 '소냐'라는 이름을, 이웃 사람들은 '난이(못난이의 약자)'라는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게 다섯살 때. 아버지가 미국으로 '영원히' 돌아갔다는 얘기만 어머니에게서 어렴풋이 들었다. 여덟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경북 김천에서 외할머니에 의지해 살던 소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구미공단에 취직했다. 일하며 다닌 야간 고교를 졸업할 때쯤 서울에 있는 유명 작곡가에게 급우들이 "노래 잘 하는 친구가 있다"며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돼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상경한 뒤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일주일 만에 고칠 정도로 악바리였다. 그 사이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의 존재는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방송사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찾게 된 것이다. 시카고 인근의 소도시에서 만난 아버지(프레드릭 이노)는 그와 너무 닮은 '붕어빵'이었다.

아버지는 "아이엠 소리(I am sorry.미안하다)"를 연발했다. 딸과 아버지는 껴안은 채 옷깃이 젖도록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집에 아버지 사진이 한장도 없어 처음 보면 무척 낯설 줄 알았어요. 하지만 보자마자 알아보겠더라고요. 피는 속일 수 없나 봐요."

한국에 두고 온 소냐와 어머니의 존재 때문일까. 아버지는 아직 미혼이었다. "엄마가 아빠를 그리다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모두 내 잘못"이라고 흐느끼며 자책했다고 했다.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한국에 몇번이나 가려고 했지만 직장 때문에 여의치 못했다고 했다. 소냐는 그곳에서 머무르는 일주일간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가수 활동도 이야기하고, 아빠 가족들에게 한국 음식을 해주면서….

소냐는 요즘 일주일에 한번 정도 아버지와 통화한다. 아버지가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아 대화가 제법 통한다고 했다. 소냐의 아버지는 내년 1월 중순께 한국에 오기로 했다. 소냐가 출연하는 뮤지컬을 보기 위해 일부러 짬을 냈다.

"아버지는 제가 가수가 된 게 너무 기특한가 봐요. 가수는 목이 상하면 안 된다며 걱정이 많으세요. 아버지는 불고기.육개장.닭도리탕 등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하세요. 제가 직접 만들어드릴 거예요. 만날 날이 손꼽아 기다려져요."

한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가족 이야기를 꺼내놓는 그에게 이젠 과거의 아픔도, 외로움도 없어 보였다.

글=박지영,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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