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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클로즈 업] 朴도사, '구령呪' 암송하며 신통력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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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신비. 이 두 가지는 인류 정신사의 영원한 숙제다. 논리가 발달된 사람을 보면 신비적 직관이나 영감이 퇴화되게 마련이고, 반대로 영감이 발달된 사람은 논리가 약하다. 월급쟁이는 논리만 가져도 충분하다. 그러나 최고경영자(CEO)를 하려면 논리에다 영감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논리를 단련하는 방법은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감을 개발하는 방법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영감이란 다차원의 복잡성을 일차원의 단순성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명리학의 공부 방법도 마찬가지다. 사주에 관한 책을 부지런히 보는 단계는 논리를 학습하는 과정이다. 일단은 열심히 책을 파야 한다. 하지만 운명이라고 하는 4차원 게임은 책을 열심히 본다고 해서 정복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직관과 영감을 길러야만 가능하다.

사주에 관한 책들은 오직 평균개념만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평균은 가운데만 알 수 있고, 아래와 위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마치 주식시세의 변화를 나타내는 그래프와 같다. 일종의 통계와 같다는 말이다. 그래프와 통계를 통해 대강의 변화는 짐작할 수 있지만, 그 시점에 닥쳐서 반드시 예전 그래프대로 움직이라는 법은 없다. 디테일을 알기 위해서는 그래프 외에 플러스 알파, 즉 영감이 있어야 한다.

도사들이 영감을 개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 중의 하나가 주문(呪文)을 암송하는 것이었다. 소리는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도 파워를 지닌다. 반복해서 어떤 소리를 내면 효과가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만번 수십만번 그 이름을 반복해서 불러주면, 주술적인 힘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소리는 또한 인체의 오장육부하고 관련 있기 때문에 특정 소리를 계속해서 발성하면 그 해당 장기가 강화되거나 약화될 수 있다. 종교적인 용도의 주문은 좀더 복잡해진다. 종교적 주문은 그 소리와 감응하는 신들의 세계가 있고, 이 신들의 세계에서 그 사람에게 힘을 준다. 마치 인터넷에서 클릭을 반복해서 들어가다 보면 특정의 사이트와 접속되는 이치와 같다. 제대로 접속이 되면 그 사이트에 저장돼 있는 정보를 무한정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죽통병'이 그것이다. 주문수행은 '죽거나, 통하거나, 병들거나'중의 하나로 귀결된다. 담력이 약한 사람은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고 정신착란에 빠져 버릴 수 있다.

제산이 암송한 주문은 '구령삼정주(九靈三鼎呪)'였다. 그는 명리학 책을 통해 신통력을 완성한 것이 아니고, 바로 이 '구령삼정주'를 암송해서 능력을 얻었다는 것이 필자의 최종결론이다. 구령주는 도교의 '옥추경(玉樞經)'이라는 경전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의 주문이다. 조선 후기에 민간도교에서 '칠성경(七星經)'과 함께 '옥추경'은 재야의 방술에 관심이 있는 지식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경전이었다.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효험이 즉발하였기 때문이다. '칠성경'이 북두칠성을 받드는 신앙을 담고 있다면, '옥추경'은 우레의 신을 받드는 경전이었다. 전자가 주로 명이 짧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용도로 숭배되었다면, 후자는 우레의 신을 이용하여 잡귀를 쫓는 양재초복(禳災招福)의 용도였다. '옥추경'을 추적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추사 김정희도 이 경을 중시하였다는 점이다. 조선후기 도사들이 애용하였던 '옥추경'판본에는 추사의 글씨가 들어가 있다. 그 서문을 추사가 써 놓은 판본이 있다. 추사에 대한 연구 논문을 보아도 이 서문에 대한 분석은 아직 발견할 수 없었다. 아름답고 품격있는 추사체로 서문이 장식된 '옥추경'은 불교의 '천수경(千手經)'과 함께 조선후기에 가장 애송되던 주문이었다.

추사가 '옥추경'을 좋아했던 배경에는 종교적인 효험도 한편으로 작용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경에 나오는 문장이 좋아서 그랬다고 본다. 즉 이 경의 운율이 아주 기막히게 맞는다는 것이다. 운율은 리듬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운율이 맞아야 암송하는 재미가 있고, 운율이 맞다 보면 노래처럼 흥겹게 암송할 수 있다. 지금이야 운율이 퇴색해 버렸지만 조선 후기의 한문 식자층들에게는 한문 고유의 운율을 중시했던 것 같다. '옥추경'의 운율은 추사뿐만이 아니고, 조선 후기에 '정역(正易)'을 저술한 김일부(金一夫.1826~1898)에게까지 이어진다. '정역'의 주장은 선천과 후천의 교체다. 선천시대가 양적인 에너지가 주도하는 세상이었다고 한다면, 후천시대는 감성적인 성격을 지닌 음적인 에너지가 주목받는다고 보았다.

여자들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본 것이다. 김항은 그 변화를 '금화송(金火頌)'이라는 노래로 표현하였다. 김일부가 남긴 5개의 금화송 가운데에서도 첫째인 '금화일송(金火一頌)'의 내용이 바로 '옥추경'의 운율을 따서 지은 내용이라고 한다. 금화송을 운에 맞춘 이유는 운이 맞아야 거기에서 영적인 힘이 나온다고 본 까닭이다.

이 지적은 평생 동안 계룡산파의 멤버로서 정역을 연구해온 권영원(權寧遠.1928~) 선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렇다면 구령주 역시 운율에 맞추어 암송하는 주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제산의 구령주를 추적하면 백운산 영암사 시절부터 지도를 받았던 윤일봉 선생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윤일봉은 충청도 아산 사람으로서 계룡산파와 관련이 깊었던 인물이었다. 김일부와도 모종의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지리산파였던 제산은 구령주를 연결고리로 해서 계룡산파의 김일부와 끈이 이어졌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도사가 보여주었던 가공할 만한 파워의 진원지는 구령주라고 하는 주문이었다.

박도사는 구령주의 파워를 너무 많이 발휘한 감이 있다. 세간에 너무 노출됨으로 해서 피곤한 인생을 살아야만 하였다. 명성이 알려진 도사는 익명의 다중을 상대하여야만 한다. 익명의 다중, 그 가운데는 온갖 사람과 사건이 잠복되어 있다. 도사는 그 잠복된 지뢰를 미리 알고 피해 나가야만 하는 고난도의 직업이다. 10개의 지뢰 중에서 9개는 피하더라도 마지막 한개를 피하지 못하고 그물에 걸려들면 그야말로 처참한 망신을 당한다. '그러고도 네가 도사냐?'하는 비아냥거림과 조롱을 감수해야 한다.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 비결은 은둔이다. 숨어 있어야 한다.

서양의 신비주의자들은 악어가죽을 거처에다 걸어두고 보았다고 한다. 왜 악어냐?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악어의 두껍고 질긴 가죽처럼 욕심이 많다는 사실을 통찰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악어처럼 물속에 숨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악어는 평상시 물속에 숨어 있는 동물이다. 오로지 두 눈만 내놓고 몸은 물속에 숨어 있으므로 밖에서 볼 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악어는 밖을 잘 관찰할 수 있지만, 밖에 있는 상대방은 물속에 숨어 있는 악어를 관찰할 수 없다. 나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볼 수 있지만, 상대방은 나의 움직임을 볼 수 없도록 하는 처신은 천기(天機)를 다루어야 하는 도사의 필수적인 덕목이 될 수 있다. 만약 악어가 물 밖으로 나가서 바위 위에 올라가 햇볕을 쪼일 때는 대단히 위험하다. 노출되어 있으므로 사냥꾼의 집중사격을 받을 수 있다. 제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 해도 일단 무대 위로 올라가면 집중사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총을 쏘면 어떻게 하겠는가. 맞아야지 별 수 있겠는가.

비상구가 봉쇄된 무대에 올라간 도사에겐 불행만이 기다린다. 그러므로 도사는 무대 위로 올라가기 전에 삼십육계 놓을 자리를 미리 확보해둔 뒤에 올라가야 한다. 36번째 마지막 계책은 역시 튀는 일이다. 이 세상은 어찌 되었든 튀어야 한다.

진(晉)나라 때 저명한 풍수이자 도사였던 곽박도 도망을 가지 못해서 결국 권력자에게 희생을 당했다. 당대(唐代)의 도사 양구빈과, 송대(宋代)의 도사 오경만은 머리를 깎고 절로 숨어 버린다. 애석하게도 박도사는 튀지를 못하였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따라다니는 통에 마음 편하게 쉬지 못하였다. 결국 66세의 나이로 2000년에 사망하였다. 도사치고는 너무 일찍 죽었다. 나는 박도사의 일생을 보면서 공성신퇴(功成身退.공을 이루면 몸을 숨긴다)의 철리를 되씹어 본다.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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