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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서 기업추천서 얻기 경쟁/선후배 양보없이 제비뽑기까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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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못구한 학생은 시험도 못쳐/우수인력 유치 차질 우려/응시기회 제한 부작용도
대졸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는 가운데 기업이 우수인력 확보를 위해 대학에 의뢰하는 추천서 제도가 크게 변질돼 대학가의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추천서제도는 원래 교수의 추천을 받은 지원자에게 입사 특혜를 주는 제도였으나 근래 필기·면접시험 전에 서류전형을 실시하는 기업들이 채용인원의 3∼4배수 정도로 한정해 대학에 배포하는 입사지원서가 추천서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변질돼 사실상의 취업기회 제한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추천서 없이는 응시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추천서를 먼저 차지하려는 경쟁이 벌어져 취업준비생들끼리 추첨으로 나눠 갖는 등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태=모든 지원자에게 응시 기회를 주는 공개채용을 실시하는 기업은 삼성·현대·포철 등 일부 대기업에 불과하고 대부분 기업들은 서류심사나 한정된 지원서 배부 등을 통해 응시자를 제한하고 있다.
선경그룹은 서울의 각 대학·지방국립대에 1천여부 배포한 입사지원서를 갖고온 지원자들에게만 11월1일 필기·면접시험을 실시해 신입사원 3백50여명을 뽑을 예정이다. 한진·금호·대한통운 등도 추천서를 갖고 온 학생에 한해 면접을 볼 예정.
기자·PD·기술직 포함,20여명을 뽑을 예정인 모방송국은 입사지원서를 3백장만 배포했으며 10월초 입사시험을 실시했던 J·H은행 등은 추천서를 갖고온 학생중 성적이 3.5이상인 지원자에 한해 시험볼 기회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 갈등=모든 대학생에게 응시 기회를 주는 공채를 실시하는 기업의 채용인원수는 17만여 졸업 예정자의 6%인 1만여명에 불과해 응시 기회를 얻으려는 선후배·동료간에 추천서를 놓고 갈등을 빚어 최근 많은 대학에선 추천서가 들어오면 학번·성적에 관계없이 취업 준비생끼리 제비뽑기를 해 배분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J대 교육학과 과대표인 김모군(26·4년)은 『과거에는 선배에게 우선권을 줬지만 이젠 뒷말이 많아 할 수 없이 제비뽑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점=대부분의 대학에서 추천서가 교수의 지도없이 졸업예정자들끼리 나눠먹기식으로 분배돼 추천서는 해당 기업의 적임자를 가려내는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응시 기회를 소수 대학 출신자들에게만 제한하는 역기능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고려대 이만우교수(44·경제학)는 『추천서제도는 이미 본래의 기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경쟁원칙도 깨뜨리고 있다』며 학생들에게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기업측에 필요한 사람이 채용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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