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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 속에 선명한 ‘한국魂’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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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15면

오가사와라가 ‘한국인’ 선수에서 한국계 선수가 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삿포로에서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일본 나가시마 시게오 대표팀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귀화했다. 한국인의 귀화를 위한 행정절차는 최소 6개월, 보통 1년이 걸린다. 그런데 오가사와라는 이틀 만에 서류가 정리됐다.

‘외국인 등록증’을 가진 선수들

김성한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이 1996년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코치 연수를 갔을 때의 일.

당시 호시노 센이치 주니치 감독은 김 전 감독을 따로 불러 함께 식사했다. 드문 일이었다. 김 전 감독은 “호시노 감독이 팀 내의 한국계 선수와 코치들을 하나하나 얘기해 줬다. 그 양반도 한국계라는 소문이 있던 터라 용기를 내서 물었더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호시노 감독이 자신이 한국계라고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몇 해 전 NHK 해설위원에 지원했을 때 이력서에 ‘한국계’라고 썼다고 한다. 호시노 감독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자 일각에서는 “한국계 감독이 일본 대표팀을 맡아도 되는가” 하는 반론이 일기도 했다.

일본 야구에서 한국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 이상이다. 사실은 대단히 많다. 현역 선수 중 20% 이상이 한국계로 추정된다. 귀화한 선수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포함된 수치다. 히로시마 카프는 마무리 투수 나가카와 가즈히로를 비롯해 30% 이상의 선수가 외국인 등록증(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기량으로 보면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한국계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계임을 드러내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일본 미디어도 야구 스타들의 뿌리를 굳이 파헤치지 않았다. 합의된 침묵이었다. 그런데 최근 스스로 한국인 또는 한국계임을 밝히는 선수가 나오고 있다. 한신 타이거스의 가네모토 도모아키(김지헌)가 대표적이다. 세상이 달라져가고 있는 것일까.

“어라? 너도 한국계야?”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은 재일동포 2세로 42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고향은 경남 진양. 김 감독은 59년 재일동포 고교선발팀 선수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다. 그는 고교 시절 한국인의 얼굴을 가진 친구들과도 ‘핏줄’에 대해 얘기하지 못했다. 한국에 와서야 서로 “너도 한국인이었지?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일본 지바 롯데 머린스 코치로 있을 때 재일동포 2, 3세 선수들로 가상의 라인업을 만들어 봤다. 김 감독은 “재미삼아 한번 써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 이 선수들이면 세계 최강급 팀을 만들 수 있다”며 웃었다. 재일동포 사회와 일본 야구계의 속내를 잘 아는 그의 ‘증언’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재일동포 드림팀’에는 우선 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ㆍ마쓰이 가즈오(콜로라도 로키스) 등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포함된다. 뉴욕의 마쓰이는 증조부가 한국인으로 알려졌고 콜로라도의 마쓰이는 2001년까지 북한 국적을 유지했다. 기요하라 가즈히로(오릭스 버펄로스)ㆍ오가사와라 등 일본 무대의 스타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퍼시픽리그 최고의 투수 사이토 가즈미(소프트뱅크ㆍ2003년 귀화)ㆍ아라이 다카히로(히로시마)ㆍ모리모토 히초리(니혼햄ㆍ森本稀哲;한자 ‘희철’을 ‘히초리’로 발음)ㆍ미야모토 신야(야쿠르트ㆍ일본 선수노조 회장)ㆍ하야시 마사노리(요미우리ㆍ한자이름 林昌範) 등을 더하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색없는 강팀이 된다. 김 감독은 “뉴욕 양키스의 이가와 게이도 한국계”라고 단언했다. 

전설이 된 두 이름

그동안 야구선수가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히는 대표적인 ‘한국인 선언’ 방법은 일본 대표팀 발탁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일본 야구의 간판급 타자ㆍ투수인 기요하라와 사이토는 끝까지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사양했다. 뉴욕의 마쓰이가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를 끝내 고사한 것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일본인들이 있다.

기요하라는 태도가 분명하다. 그는 자신과 같은 오사카 출신인 한국계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아키야마 요시히로)의 경기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2005년 추성훈이 오사
카에서 K-1 데뷔전을 할 때는 세컨드를 맡았다.

지난해에는 안면이 전혀 없는 이승엽에게 불쑥 방망이 한 자루를 선물하고는 “우리 생일이 비슷하니 함께 파티를 열자”고도 했다.

일본 야구의 전설이 된 한국인ㆍ한국계 선수가 있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유일하게 통산 400승을 기록한 김정일(가네다 마사이치)과 통산 3000안타를 돌파한 장훈이다.

김정일은 1950, 60년대 일본 야구를 평정한 왼손투수. 400승 외에 4490탈삼진, 12년 연속 2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의 등번호 34번은 요미우리에서 영구 결번됐다. 일본에 귀화했지만 한국인임을 숨기지는 않았다.

일곱 차례 타격왕, 불멸의 3085안타에 빛나는 장훈은 ‘하리모토 이사오’라는 이름으로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지만 여전히 ‘외국인’으로 산다. 그는 58년 한국에서 열린 한ㆍ일 고교 친선 야구대회에 참가해 처음으로 고국땅을 밟는다. 그때 만난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손을 잡고 “조국을 잊지 말라”고 한 당부를 잊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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