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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탄핵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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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의 망동(妄動)이 드디어 국기(國基)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는 국법을 무시하고, 헌법재판소를 부정하고, 선관위를 능멸했다. 이는 명백한 탄핵감이다. 그러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탄핵으로 인한 국정과 경제의 불안이 염려되는 데다 2004년 탄핵이 오히려 그와 정권을 결정적으로 도와주었던 선례도 있다. 그래서 탄핵을 거론함에 매우 신중해야만 하는 작금의 상황이 안타깝다. 국가는 지금 대통령발(發) 위기에 봉착했다. 국민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대통령은 국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그는 어제 원광대 특강에서 한나라당 유력주자 2인의 감세 공약을 비판하며 "복지정책을 완전히 골병들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명박씨의 대운하 공약에 대해 다시 "민자 유치하겠다 하는데 민자가 진짜 들어오겠나"라고 했다. 그는 "(이씨가) 참여정부 실패했다 하는데 '여보쇼. 그러지 마쇼. 당신보다는 내가 나아'"라고도 했다. 대통령의 품격을 저잣거리에 내던지는 표현이다.

선관위는 바로 그제 "노 대통령이 1일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폄하하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대통령을 경고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채 하루가 못 되어 재범을 저질렀다. 2004년까지 합치면 3범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어느 범죄를 세 번 저지르면 영원히 사회에서 퇴출시키기도 한다.

대통령은 선관위를 능멸했다. 선관위는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헌법에 규정된 독립기관이다. 대통령과 동격이다. 그는 선거법 제9조를 언급하면서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위선적 제도"라고 했다. 이는 이 조항을 근거로 결정을 내린 선관위를 위선적 기관이라 매도한 것과 같다. 국민이 보는 앞에서 경고 공문을 받은 지 한나절 만에 종이를 찢어버린 꼴이다. 선관위가 헌법기관이므로 선관위의 경고는 국민의 경고였다. 대통령은 국민의 뺨을 때렸다.

대통령은 헌법과 헌법재판소를 능멸하고 무시했다. 그는 1일엔 "그놈의 헌법"이라고 했다. 만약 미국 같은 나라에서 대통령이 헌법(constitution) 앞에다 그런 수식어를 달았다면 이것만으로도 탄핵이 거론될 것이다. 그는 어제는 "공무원법에는 대통령의 정치활동은 (금지에서) 예외로 한다고 하고, (선거법에서는) 선거는 중립하라고 하는데, 정치에서는 중립 안 해도 되고 선거에서는 중립하라는 얘기인가"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완전 무지의 소치다. 공무원법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을 예외로 한 것은 대개 이들이 당적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 평상시 정치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선거법에서 중립 의무를 둔 것은 선거 때는 이런 정치운동이 중단돼야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고 국정이 매끄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거 국면이니 당연히 선거법이 우선돼야 한다. 더군다나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는 2004년 탄핵심판 때 헌재가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다시 문제 삼는 것은 의식적으로 헌재를 공격하고자 하는 뜻 아니겠는가.

대통령은 이렇듯 스스로 아노미(anomie.무법상태)로 달려가고 있다.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그런 그를 주저앉혀야 한다. 자만에 빠져 있는 일개 대통령이나 정권보다 국가와 법이 더 영원하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선관위는 다시 회의를 열어 대통령의 재범을 심판해야 한다. 그제 결정에서 선관위는 '선거운동 위법'까지 규정하진 않았다. 대통령이 후보자를 당선하게 하거나 낙선되게 할 목적으로 능동적.계획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제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활동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곧 야당 후보의 낙선을 기도하는 것이다. 선관위는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운동에 해당되는지 속히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그렇다고 판단되면 검찰에 고발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소추(訴追)를 당하지 않지만 퇴임 후에는 다르다. 또다시 법정에 서는 대통령을 보아야 할 비극을 겪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