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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토론(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현대정치에서 국가 지도자가 전파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설득다운 설득을 처음 시도한 것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대통령이다. 그의 유명한 노변정담(Fire­side Chat)을 듣고 작가 도스파소스는 이런 말을 했다.
『듣는 사람 한사람 한사람을 지목해서 말하는듯 하면서도 사실은 전체에 말하는… 보호자라 할까,혹은 교장선생님이라 할까,아니면 침대곁에서 환자를 타이르는 의사의 말씨같은 것이었다.』 TV시대에 들어와 가장 덕을 본 사람은 레이건대통령이다. 8년의 집권기간중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TV에 출연,화사한 제스처와 함께 풍부한 유머를 구사할 수 있었던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현대 정치는 TV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엊그제 미국에서는 대선에 출마한 세 후보의 TV토론이 벌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열세를 만회하려던 부시후보가 젊은 클린턴후보에게 판정패 당했다는 평가는 TV토론을 처음 시도한 지난 60년 대선 때의 닉슨과 케네디의 대결을 회상케 한다. 당시 케네디는 참모들과 1대 1로 연습한데 반해 닉슨은 호텔에 틀어박혀 혼자 연습했다. 그러나 정작 TV화면에 비친 케네디는 해변에서 갖돌아온듯 활기에 차있는 반면 닉슨은 얼굴이 창백하고 지친 표정이었다. 더구나 5시 방향으로 기운 그의 얼굴엔 그림자 마저 드러워져 있었다. 이 첫 대결의 참패로 닉슨은 만회할 기회마저 잃고 말았다. 마치 사각의 정글을 연상케 하는 대선주자들의 TV토론은 물론 「얼굴」만으로 승자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주먹」(말솜씨)도 있어야 한다. 76년 카터와 포드의 대결은 용모와 주먹은 막상막하였으나 포드가 실언함으로써 링을 내려왔다. 80년 카터­레이건의 대결,84년 레이건­먼데일의 대결은 모두 큰 주먹 없이 잽으로 끝났지만 여유와 유머가 앞섰던 레이건이 착실하게 점수를 딴 경기였다.
TV토론의 승자가 되려면 용모와 소신,교양과 품위,그리고 재치있는 언변이 뒷받침 돼야 한다. 그러나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됨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도 돈 안드는 깨끗한 대선을 치르려면 TV토론을 활성화시킬 수 밖에 없을 것이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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