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제10회 한국오픈에서 우승해 대회 3연패를 달성한 필자가 박두병(右) 대한골프협회장으로부터 우승트로피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나는 그분을 통해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얻었다. 바로 골프 매너다.
서울컨트리클럽 5번 홀은 파5 롱홀이었다. 오른쪽으로 약간 휘어진 도그레그홀이어서 티샷을 페어웨이 왼쪽으로 보내면 그린이 보였다. 오른쪽에서는 그린이 잘 보이지 않았다. 60년대 중반 어느 날 라운드에 나섰다. 그런데 바로 앞 조가 박두병 이사장 팀이었다.
내 티샷은 페어웨이 약간 오른쪽에 떨어졌다. 그린이 보이지 않았지만 세컨드샷을 날린 동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던 내게 "쳐도 된다"고 했다. 나는 '그린 근처에 보내자'는 생각으로 샷을 날렸다.
어라,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 공이 페워웨이에서 크게 튕기더니 그린으로 굴러 올라가 퍼팅을 하고 있던 박 이사장의 다리에 맞고 멈춘 것이다. 큰일났다 싶어 나는 죽어라 뛰어가 사과했다.
"이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보이지 않아 무심결에 공을 치고 말았습니다."
손이 발이 되도록 용서를 빌었다.
6번 홀 앞 그늘집에 있던 박 이사장은 "잘 보고 쳐야지 골프를 그렇게 해서야 되겠나. 그래서 무슨 선수가 되겠어"라고 꾸짖었다. 화가 덜 풀린 듯했다. 라운드를 마치고 나서 다시 박 이사장을 찾아가 거듭 사과를 드렸다.
"자네, 연덕춘 프로한테 이야기해 놨으니 앞으로 정신 차려서 잘 배워"라고 말했다. 나는 그 사건이 그대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잠시 뒤 연 선생이 날 불렀다.
"너 당분간 골프를 못하게 하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골퍼한테 라운드를 하지 말라니. 다른 골프장이 없던 그 시절 그 말은 내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며칠을 기다렸다가 연 선생에게 "제가 가서 다시 용서를 빌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서울 종로5가 근처 박 이사장 댁으로 찾아갔다. 나는 두 번의 속죄 방문 끝에 "다시는 그러지 마라"는 말씀과 함께 사면령을 받았다.
당시에는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뒤부터 라운드를 할 때 앞 팀을 배려한다. 정말 좋은 습관을 익힌 것이다.
박 이사장은 원칙을 강조했고 아주 깐깐했다. 특히 말수가 적었다. 50년대 후반부터 서울컨트리클럽 부이사장을 지내 나는 골프 입문 이후 군자리에서 자주 뵐 수 있었다. 박 이사장은 주로 가족과의 라운드를 즐겼다. 아들.딸.사위.며느리 등이 동반자였던 골프를 즐길 줄 아는 신사였다.
골프는 에티켓의 스포츠다. 골프 규칙서 맨 앞에 나오는 것이 에티켓이다. 에티켓과 규칙을 잘 알고 잘 지키는 골퍼가 공을 잘 친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아는가.
한장상 KPGA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