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후지쓰배 4강 한·일 맞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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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창호 9단

후지쓰배 세계선수권 8강전이 2일 광화문의 서머셋팰리스 호텔에서 열리더니 곧이어 LG배 세계기왕전 32강전(4일)과 16강전(6일)이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한.중.일의 강자들이 뒤엉켜 모처럼 숨가쁜 한 주일을 보냈는데 비록 우승자가 가려진 것은 아니지만 세계바둑의 흐름과 관계된 몇 가지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첫째, 오랜 세월 쇠락의 길을 걸어온 일본 바둑이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둘째, 중국의 추격에 휘청거렸던 한국 바둑이 성공적인 세대교체에 힘입어 다시금 최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요다 9단

◆후지쓰배 8강전=한국은 이창호 9단이 후야오위(胡耀宇) 8단에게 2집반 승을 거두며 건재를 과시했고 박영훈 9단도 저우허양(周鶴洋) 9단을 반집 차로 꺾었다.

최철한 9단은 일본의 장쉬(張) 9단에게 불계로 졌다. 일본은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마저 왕시(王檄) 9단을 격파해 2명 모두 4강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일본이 주최하는 후지쓰배는 지난 9년간 한국이 독식해 왔고 이번에 10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세계대회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느낀 일본 측은 20년 전인 1988년 첫 대회 때보다 상금을 줄이는 파격적인 행동마저 서슴지 않았다.

박영훈 9단

하지만 이번 후지쓰배 8강전에선 세계바둑의 새로운 패자로 발돋움하던 중국이 전멸한 대신 쇠락 일로를 걸어온 일본이 되살아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오랜만에 한.일전으로 치러지는 준결승전은 이창호 9단 대 장쉬 9단, 박영훈 9단 대 요다 노리모토 9단의 대진으로 7월 7일 도쿄에서 치러진다.

◆LG배 32강전과 16강전=이창호 9단이 후야오위와 또다시 마주쳤는데 이번엔 반집을 졌다. 박영훈 9단도 조치훈 9단에게 불계패해 후지쓰배 4강 진출자들이 모두 첫판(32강전)에 탈락하고 말았다.

세계무대는 이제 강자와 약자가 따로 없고 실력차도 거의 사라졌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한국은 이세돌 9단, 박정상 9단에 이어 온소진 3단, 한상훈 초단까지 4명이 8강에 올랐다.

한상훈 초단은 류시훈 9단에 이어 16강전에서 중국 랭킹 1위 구리(古力) 9단의 대마를 잡는 괴력을 발휘하며 초단으로는 사상 처음 세계대회 8강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프로 관문을 통과한 뒤 올해 국내의 왕위전에서 도전자결정전까지 진출해 바둑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한상훈이 이번엔 세계무대마저 휘저어 버린 것.

장쉬 9단

온소진 3단은 일본의 기성(랭킹1위) 타이틀 보유자인 야마시타 게이고(山下敬吾) 9단을 꺾고 8강에 올라 한상훈과 함께 선배기사들의 빈자리를 훌륭히 메웠다.

일본은 불과 5명이 32강전에 나섰으나 4명이 1회전을 통과해 최고 승률을 보였다. 16강전에서도 조치훈 9단이 반집 차로 탈락해 아쉬움을 샀으나 장쉬 9단과 고노린(河野臨) 9단이 8강 진출에 성공해 후지쓰배에서의 부활 무드를 그대로 이어갔다.

8강전은 이세돌 대 장쉬, 박정상 대 후야오위, 온소진 대 고노린, 한상훈 대 류징(劉菁).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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