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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쉼] 금수강산 안방마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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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산이 아니었다. 신화였다. '관동별곡'의 정철부터 '나의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문화재청장까지 당대의 문사들이 바친 헌사만 허공 중에 맴돌았다. 9년 전 대북 관광이 시작되면서 그런 금강산이 다시 산이 됐다. 기암괴석 만폭백담도 산은 산, 물은 물일 뿐. 신화가 사라진 자리엔 대신 이런저런 '현실'의 목소리가 떠돌았다. '통제가 심하다' '여정이 짧다'…. 지난 1일 시작된 내금강 관광은 그런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만폭동 코스는 만물상 코스처럼 짧지 않고 세존봉 코스처럼 험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총석정 빠진 해금강 코스보다 볼거리가 많다. 한마디로 '대중적으로 가장 매력 있는 코스'다. 금강산 관광 9년 만에 열린 내금강. 신화일랑 잊고 '산'을 즐겨보자.

<내금강> 글·사진=김한별 기자

멀고 먼 내금강 가는 길

관광객 숙소가 있는 외금강 온정리에서 내금강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금강산 북쪽 자락을 타넘기 때문이다. 온정령 오르막길은 굽이굽이 무려 106굽이. 거기다 온정령 굴(터널) 지나 고개를 내려서면 비포장도로다. 그런 길로 1시간40분을 달린다. 옛 사람들도 이렇게 힘들게 내금강을 찾았을까? 일제시대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경성(서울) 사람들은 기차편으로 철원까지 간 뒤 전차를 갈아타고 내금강역으로 직행했다. 내금강 역에서 장안사까지는 걸어서 20분, 버스로는 고작 5분 거리였다. 외금강 가는 사람들만 말휘리역에서 내려 차편으로 온정리로 넘어갔다. 분단과 함께 철로가 끊기면서 전통적인 내금강→외금강 순서의 금강산 여정이 뒤집힌 것이다.

내금강행 버스는 단풍리와 내강리, 두 마을을 지난다. 덕분에 온정리에선 먼발치로만 바라보던 북한 주민들의 삶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똑같은 레이스 커튼, 똑같은 조화 화분으로 똑같이 장식한 다가구 주택, 대낮임에도 텅 비어 영업을 하는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국숫집·약국…. 인적 드문거리는 깔끔하다기보다 창백해 보인다.

계곡미의 진수 - 만폭 8담

본격적인 관광은 표훈사에서 시작된다. 금강산 4대 사찰 중 유일하게 남은 곳. 하지만 어차피 하산길에 다시 거치게 되니 구경은 잠시 미뤄둬도 좋다. 영산전을 우회해 금강문을 지나면 바람결에 세찬 물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만폭동의 시작이다.

육당 최남선은 금강예찬에서 금강산의 다른 구경은 모두 만폭동 구경의 부록이라고 했다. 둘도 없는 극찬이다. 이유가 뭘까? 보통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10대 미로 표현된다. 기암절벽 산악미, 단풍의 색채미, 삼일포의 호수미… 이런 식이다. 그중 계곡미의 진수로 꼽히는 게 바로 만폭동이다. 만폭동은 바위 투성이 계곡이다. 한데 그 모양이 금강대 너럭바위부터 구담 거북바위까지 기기묘묘하게 다 다르다. 그 위로 풍부한 수량의 계곡수가 흐른다. 바위를 만난 물은 휘감아 돌고, 치받고, 떨어지고 천변만화하게 마련. 자연 계곡 전체가 크기·모양이 제각각인 폭포와 못 천지다. 만폭(萬瀑)이란 이름도 그래서 나왔다.

만폭 8담 중 최고는? 보통 벽하담·분설담·진주담이 3대 수담(水潭)으로 꼽힌다. 하지만 북측 관광해설원 엄영실씨는 그중에서도 "진주담이 최고"란다. 조선 말기의 학자 이상수도 '동행산수기'에서 진주담을 첫손에 꼽았다. 진주담은 만폭8담 중 다섯 번째. 폭포 높이가 13m나 되는데 그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쳐 흩어지는 모습이 진주알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

절벽에 매달린 국보 - 보덕암

만폭동의 매력은 또 있다. 역시 10대 미에 속하는 건축조각미. 벽하담 지나 계곡 건너편을 올려다보면 깎아지른 법기봉 중턱에 암자 하나가 매달려 있다. 북한 국보 98호인 보덕암. 고구려 때 창건한 암자로 7.3m 구리 기둥 하나로 아슬아슬 몸을 받치고 있다. 일본 교토의 기요미즈테라가 절벽에 매달린 절로 유명하지만 139개의 기둥을 받쳤으니 크기는 몰라도 '난이도'는 보덕암이 윗길. 단층이면서도 지붕을 사가·배집·겹처마합각 3겹으로 쌓아올려 다층집처럼 보이는 구조도 독특하다. 자연의 걸작 만폭동 계곡에 딱 어울리는 건축의걸작. 북측 신은경 해설원은 "만폭동이 있기에 보덕암이 아름답고, 보덕암이 있기에 만폭동이 빛난다"고 말한다.

만폭 8담·마하연 터를 지나면 묘길상 가는 길이 나온다. 절벽 아래 개울을 따라가는 좁고 거친 길이지만 그저 걷는 맛이 있는 정도다. 만폭 8담만은 못해도 화개담 등 작은 못이있어 심심치도 않다. 화개담 지나 작은 언덕을 돌아가면 묘길상이 있다. 높이 15m, 폭 9.4m로 마애불 중 우리나라 최대. 하지만 큰 덩치가 다는 아니다. 정확한 신체 비례와 살짝웃음을 머금은 입술 표정이 섬세하기 그지없다. 묘길상에서 화개동 개울길을 따라 내처 6㎞여를 오르면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이다. 하지만 이번에 열린 내금강 코스는 묘길상까지. 비로봉에 오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밖에. 내려오는 길엔 계곡 위에 가로놓인 출렁다리를 건너 보덕암까지 직접 올라볼 수 있다.

여행정보

■현대아산에서 내놓은 내금강 관광 상품은 2박3일 코스. 도착 첫날은 교예공연 관람(일반석 30달러), 온천욕(1회 12달러) 등을 하고 둘째 날 내금강, 셋째 날 외금강(구룡연, 만물상, 해금강 3개 코스 중 선택)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9월 30일까지는 성수기 42만원, 최성수기 52만원(호텔 스탠더드룸 기준, 집결지인 화진포 아산 휴게소까지의 교통비 및 현지 중.석식 불포함)에 이용할 수 있다. 이후엔 각각 2만원씩 오른다. 매주 월.수.금요일 출발. www.mtkumgang.com, 02-3669-3000.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금강산 면세점이 지난달 28일 문을 열었다. 온정각 동관 1층. 북한 특산품과 관광 기념품만 팔던 서관 면세점과 달리 양주와 담배, 화장품, 유명 등산용품 등도 판다. 구매한도는 1인당 300달러(양주 1병, 담배 1보루)까지. 달러와 신용카드 결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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