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임웅의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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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임웅(1823∼1857)의 자는위장이며 청말 상해에서 활약한 네사람의 임씨화가들(임웅·임훈·임백년·임예)중의 한 사람이다.
상해는 18세기초부터 신흥상업 항구로 양주의 뒤를 이어 새로운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아편전쟁(1840∼1842)이후 물밀듯 들이닥친 서구문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된 지역이다.
이곳에서 활약한 화가들을 상해파(또는 해파)라고 부르며 이들은 자연히 신흥상인들의 취향에 맞는 화려하고 혁신적인 그림을 그렸다.
임웅의『자화상』은 이러한 상해파 인물화의 현대적 경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얼굴·어깨·가슴등 인체의 노출된 부분이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반면 풍성한 의상은 실제 옷주름과는 상관없이 심하게 각이 진 먹선으로 그려져 추상에 가까운 형태를 보여준다.
이어 몇개의 간결한 수직선으로 내려그은 통 넓은 바지, 그 폭에 맞춰 실제보다 크고 넓적하게 그려진 신발, 그리고 삭발의 정면상으로 보는 사람의 눈을 마주 꿰뚫어 보면서도 실은 자신의 내면세계로 향한 시선등으로 인해 이 인물은 우리 눈앞에 크게 부각되어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나 이처럼 지나치게 강한 대조와 독특한시선은 무언가 불안정한 심리적 자극을 준다. 이러한 느낌은 인물의 어깨 위에서부터 시작되어 왼쪽 공간을 가득 메운 자제의 내용을 그대로 표현한 것같다.
이 글에서 화가는 세속의 영화가 부질없음과 결국은 자신도 혼탁한 속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온 것에 대한 자조적이고도 허무주의적인 독백을 들려주고있다.
삭발한 승려의 모습으로 비겨진 이 자화상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탈속을 회화의 세계에서나마 이뤄보려는 화가의 간절한 바람인지도 모른다. [이성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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