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 못맞추는 통화운용/수요 감안 않고 「전년도 대비」만 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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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상반기 가뭄·하반기 홍수」 매년 반복
통화공급이 실물경제와 따로 놀아 문제가 많다. 국내총생산(GDP)으로 나타나는 실물경제의 덩치에 맞물려 통화가 배분되지 않음으로써 「상반기 돈가뭄,하반기 돈홍수」라는 자금시장의 달갑지 않은 고질병을 매년 앓고 있다. 통화배분의 불균형으로 인한 자금난 현상은 특히 해마다 2·4분기에 심해 올 연말이나 내년초로 예상되는 2단계 금리자유화를 앞두고 반드시 시정돼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연간 국내 총생산 규모를 상·하반기로 나누어 볼때 그 비율이 45대 55로 거의 일정한데도 통화의 공급비율은 30대 70선으로 심한 불균형을 나타내고 있다. 연간 경제활동의 45%가 상반기에 이뤄지는 데도 통화는 30% 정도만 공급되니 기업들은 자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특히 기업들이 본격적인 설비투자 등을 시작함으로써 자금수요가 몰리는 4월부터 6월까지의 2·4분기중 통화공급이 가장 적다는 것이 큰 문제다. 2·4분기중 풀린 돈은 지난해나 올해나 고작 1년치의 20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때면 실세금리가 뛰고 기업들은 금융비용 부담이 늘어나 견디다 못해 쓰러지는 경우가 많고,이 때문에 내년 2·4분기는 2단계 금리자유화의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반면 하반기는 경제활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넉넉한 통화가 공급됨으로써 자금사정에 여유가 생긴다. 특히 올해와 같이 1·4분기 성장률 7.4%,2·4분기 성장률 6.0% 등 경기가 전반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내리막길에 있을 때는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부진해 자금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므로 더욱 돈이 남아돌게 된다. 10월 들어 실세금리가 급격히 떨어지고 금융기관들이 넘치는 돈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같이 하반기에 통화공급이 몰리는 것은 정부의 재정지출이 연말에 몰리는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통화관리가 「그전해 같은기간 대비 몇% 이내」라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난해 같은달에 돈이 많이 풀렸으면 올해 같은달에도 많이 풀고,적게 풀린 달이면 적게 푸는 것이다.
통화당국은 해마다 이같은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하면서도 과거의 관리방식을 되풀이 해왔는데 이젠 상황이 심각해졌다.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사실상 본격적인 금리자유화인 2단계 자유화(모든 대출과 장기예금 금리 등의 자유화)가 시행될텐데 이 자유화의 성패여부는 실세금리의 움직임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와 같은 통화공급 방식을 그대로 가져가 내년 2·4분기에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돈가뭄으로 금리가 오를 경우 금리자유화는 또 다시 실패할 수 있다. 따라서 통화당국은 이 「어리석은 통화배분 방식」을 고쳐야 한다. 자금수요가 적은 올 4·4분기에 실세금리 동향을 보아가며 가능한 통화공급을 줄이는 대신 내년 상반기에 보다 여유있게 공급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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