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낮엔 사회주의 밤엔 자본주의 부업 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중국에선 직장 출입구마다「고고흥흥적 상반, 평평안안적 하반」이라는 구호가 붙어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즐겁게 일하고 평안히 돌아갑시다』의 뜻. 어느 만화가는 거북이걸음으로 출근하고, 토끼뜀박질로 퇴근하는 중국인 근로자들의 출·퇴근 모습을 풍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중국인들이 일을 적게 하려고 애쓴다는(?)얘기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인 근로자들의 직장 근무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하루 8시간만 직장에서 빈둥거리면 누구나 비슷하게 월급을 받던「사회주의방식」의 직장분위기가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평균주의 이념아래 그 견고함을 자랑하던 이른바 「쇠밥그릇」(철반완)에 금이 가고 있는 셈이다.
개혁·개방은 중국인들을 치열한 돈벌이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직장근무를 마친 뒤 다시 일에 뛰어드는 부업이 성행하고 있다.
『월급이라면 담배값이나 푼돈정도로 알아요.』
광주시의 한 근로자는 월2백위안(약3만원)수입으로는 3인 가족이 1주일을 버티기 어렵다고 말한다. 월급 외 소득이 없으면 담배 한대 사 피울 수 없으며, 최소 월1천 위안 벌이가 아니면 현상유지가 안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부업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돈을 벌려면 밤잠을 줄여야한다.
심천∼광주를 달리는 밤 기차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공단지역은 불야성이었다. 8시간제가 아닌 실적제 아래 자정을 넘겨 일하는 광경들이었다.

<퇴근 후 가라오케 행>
「뼈빠지게 일하면서」(상해택시운전사의 표현)치솟는 물가와 소비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경쟁대열에 끼어들 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지난1월 북경의 번화가 왕부정 거리에 미국의 맥도널드 햄버거가게가 문을 열면서 종업원 모집광고를 냈다
근무시간은 전일제가 아닌 파트타임으로 임의로 선택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응모한 숫자는 무려 2만여명. 기업체간부와 노동자·대학교수·대학생 등 강호제현이 구름같이 모여든 것이다,.
낮엔 공장에 나가 월 1백60위안을 버는 한 여성은 금요일 밤을 택해 4시간 일하고 매월 2백위안을 더 벌게 됐다. 본업보다 부업 쪽 수입이 더 많은 것이다.
북경시 당국은 소속직원들이 부업을 희망할 경우 허가를 받아 퇴근 후「나가서 벌 수 있도록」조치하고 있다. 개중엔 직장의 허가 없이 부업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북경시 일대에 야시장이 번창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광주시는 직원이 부업이 아니라 다른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면 아예 1, 2년 임시휴직을 보장해준다. 실패해도 돌아갈 자리는 있으니 마음놓고 도전하라는 것이다.
광주시 야시장도 명물이 되고있다. 대낮의 신분이 관료건 근로자건 관계없이 밤이 되면 좌판을 벌이고 옷 장사를 하거나 음식을 판다.
공장이나 직장에서 퇴근한 젊은 여성들이 가라오케 업소로 곧바로 출근하여 본업의 3, 4배를 버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지난해 여름 공자의 출생지인 산동성 곡부에 관광 갔던 한 주민은『84된 공자의 74대 손도 부업을 하고 있더라』고 전했다.
흰 수염에 풍채 좋은 그 노인이 옛 의관을 갖추고 외국인 관광객이 원할 경우 같이 사진을 찍고는 팁을 받아「신발 속」에 집어넣더라는 것이다.
북경호텔의 현관을 지키는 도어맨은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준비해두고 기념촬영을 할만한 고객이 나타나면 재빨리 사진사로 변신한다.
지난 겨울 영하30도의 강추위 때 흑룡강성 하얼빈시 방문 길에 받은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밤12시가 넘어 인적이 거의 사라졌는데도 거리 군데군데 자리를 지키던 과일장수들의 모습, 비닐 장막 속에 카바이트불로 난방과 조명을 동시에 해결하며 광동성 등 남쪽에서 올라온 과일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행상들은 방을 꼬박 새우는게 아닌가 싶었다.
이들도 대부분 본업을 따로 갖고 있다고 했다. 부업이 이처럼 성행하는 것은 그만큼 본직에 문제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국에서도 장려>
국영업체들의 비효율성과 함께 관료조직의 무능력·부패는 부업을 낳는 원천이라고 할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91년 현재 정부예산으로 월급이 지불되는 인력은 3천4백만명, 이는 79년의 1천5백만명에서 매년 1백만∼2백만명씩 불어난 것이다. 여기에 각 기관에서「초빙」한 별일도 하지 않고 월급만 받는「식객」들의 수를 합치면 4천만명이 넘는다.
팽창일로를 걸어온 중국정부기구는 현재 생급 당·정기관의 경우 전국에 2천1백여개의 국단위를 가지고 있다.. 1개성당 규정보다 15개 이상 초과된 70여개씩의 국이 있는 셈이다. 중국정부는 이처럼 비대한 관료조직에 대한 대수술을 벼르고 있으나 결과는 낙관불허다. 현실적인 물가수준을 반영하지 못하는 임금체계 속에서 부업은 부정·부패와 동의어가 될 수 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빽」이 있거나 뇌물을 쓰지 않으면 정부기관의 좋은 자리는 못들어 간다』상해의 한 일류대학 출신 젊은이의 불만이다. 좋은 자리란 대외경제무역국·은 행·세무국 같은 돈을 만지는 곳이나 노동국 같이 인사권을 쥐고 있는 부서다. 이른바「4대 돈방석」이다.
상해의 한 자영업자는『세무서사람과 잘 사귀지 않으면 장사하기 어렵다』면서 『세상일이란 다 그런게 아니냐』고 되묻는다.
중국당국은「부업장려」를 통해 실질적인 임금인상효과 내지 관료의 전직을 유도하는 한편 감찰기능을 강화하여 부패단속에 나서고 있다 .
최근 몇 년간 광동성 인민 검찰원에서 적발한 오직 공무원은 연평균 1만여명에 달한다. 당국의 설명으론 급증하던 오직 사건 발생이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8월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는 사회여론조사를 실시, 국민들에게 직업별 신뢰를 물었다. 신뢰도가 높은 순으로 교사·군인·노동자·기술자·과학자·농부…의 결과가 나왔다. 무사봉공·겸손·정직·성실 등 신뢰도가 높은 이 대열에서 당·정 간부, 기업가는 빠져있다. 그들은 불법·뇌물, 그리고 이기적이라는 평판을 받았다.
개혁·개방의 새로운 시대가 모든 계층에 좋은 기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7월 산동성 청도시에선 모든 시민들이 신문을 기다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1천5백여명의 부녀자들이 일하는 방적공장 소속 병원에서 낙태수술을 받았던 한 여성근로자가 사경에 빠진 것.
원인은 시술의사의 무성의가 빚은 실수. 죽은 태아를 끄집어내지도 않은 채 산모를 퇴원시켜 산모가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게된 것이다.

<지식인 의사는 금지>
이 소식이 대서특필되면서 언론사에는 의사들을 비난하는 독자편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항상「좋은 소식」 만 보도해오던 중국의 신문이 「좋지 않은 소식」을 보도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이같은 소식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의사들의 반론은 없었으나 의사들도 할말은 많을 것 같다. 욀급은 월2백∼3백위안. 그러나 의사들은 65세의 정년까지「부업」이 금지돼있다. 이념 하나로 살아가던 시대가 지나고「각자가 능력껏 달리는」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의사들만은 발이 묶여 있는 셈이다.
산모의 몸 속에 죽은 태아를 남겨둔 채 시술을 끝낸 의사의 무성의한 태도를 확대해보면 중국정부가 사회주의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의사들을 인질로 삼아 그들의 기회를 박탈한 무감각한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이며 현실에서도 최소한 낮만큼은 사회주의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밤 시간은 낮과는 딴판인 자본주의 질서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무시간을 연장하여 돈을 버는 근로자나, 밤늦게까지 일한 부업의 고단함으로 낮에는 직장에서 졸고있는 정부기관 종사자들은 그런 대로 시대 변화에 적응해가며 능력껏 이익추구에 만족해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식인·의사 등 일부 계층은 여전히 사회주의체제의 깊은 울안에 갇혀서「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명」때문에 가장 낮은 수입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실정이다. <전택원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