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는 시 한 수로 당대 명류 시인의 반열에 이름을 남긴다. 봄볕 화사한 청명절 무렵 수도 장안(長安)의 남쪽 교외를 산책하다 읊은 시다.
"지난해 이때 이 문을 들어설 적에는(去年今日此門中)/ 사람 얼굴에 복사꽃이 서로 붉게 어울렸지(人面桃花相映紅)/ 그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人面不知何處去)/ 복사꽃은 여전히 봄 바람에 웃고 있는데(桃花依舊笑春風)."
사연인즉 이렇다. 시를 쓰기 1년 전의 봄. 역시 산책에 나선 최호가 숲 속을 한참 거닐다가 들어선 외딴집의 마당이 배경이다. 그곳에서 아리따운 얼굴의 처자가 목 마른 젊은 나그네에게 물을 건넨 것이다.
복사꽃처럼 붉어진 여자의 얼굴이 젊은 시인을 끌어당겼을 게다. 최호는 여인네의 모습을 잊지 못하다가 이듬해 다시 들렀다. 그러나 사람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복사꽃만 남아 있다.
사람들은 이 애절한 만남에 살을 더 붙였다. 최호가 마침내 여인을 만나 부부의 정을 이루고 결국은 과거에 급제해 지금의 광둥(廣東) 지역 절도사로 부임한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해피엔딩이다.
결말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사람의 얼굴(人面)을 표현한 것이 이 시의 정수다. 그리고 젊은 남녀의 연정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얼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이렇듯 간략하게 표현한 것은 매우 드물다. 시의 값어치가 살아나는 대목이다.
웬 얼굴 타령일까. 요즘 한국 사회의 뉴스를 장식하는 사람의 얼굴이 이에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얼굴은 이 주 내내 크게 신문과 TV를 장식했다. 예의 거리낌없는 말솜씨에 자신 가득한 표정이 국민의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하다.
야당은 대선 후보를 검증한다면서 날이 퍼렇게 선 투쟁에 들어섰다. 대선을 위해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일지는 모르지만, 서로 흠집 내기 위해 대드는 모습의 양 진영 구성원들 표정이 그악스럽기 짝이 없다.
감금된 여중생을 상대로 성매매에 나선 1000여 명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지금 납치돼 있다"는 여중생의 애원에도 아랑곳없이 성매매를 한 이 성인들은 수심(獸心)이 내비친 인면이겠다. 요즘 한국 사회의 사람 얼굴, 아래위로 이렇게 다 망가지는가 싶어 착잡하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