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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현장] 2. 서울 강동구 갑 "누가 배신자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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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7월 7일.이부영(李富榮)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5명,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탈당 선언.이후 열린우리당 입당.

# 12월 11일.대선자금 진상 조사와 관련해 민주당의 저격수로 활약 중인 노관규(盧官圭) 예산결산위원장,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지구당 위원장직 전격 사퇴.

# 12월 17일. 내년 총선에 출마할 지방자치단체장의 사퇴 마감.이날까지 한나라당의 김충환(金忠環) 서울강동구청장 등 13명이 사표 제출.

이 일련의 뉴스들은 서울 강동갑의 17대 총선 구도를 뒤흔들어 놓았다.이 지역구는 3선인 이부영 의원의 텃밭으로 여겨지던 곳이다.李의원은 1992년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이 지역에서 금배지를 처음 단 이래,1996년엔 '꼬마'민주당으로,2000년 16대 총선에선 한나라당으로 출마해 연거푸 당선의 영광을 누렸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12년 정치적 동지'였던 李의원과 김충환 전 구청장이 내년 총선에선 서로 칼끝을 겨누게 될 지 여부다. 李의원의 탈당 후 한나라당 지역구 위원장 자리는 현재 공석이다.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냈던 이충범 변호사와 현경병 한국지식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강력한 도전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金 전 구청장은 공천을 받는 데 자신 있다는 입장이다.

▶ 윗줄 왼쪽부터 김충환(한나라당), 박치웅(민주노동당), 이금라(민주당), 이부영(열린우리당). 아랫줄 왼쪽부터 이상기(자민련), 이충범(한나라당), 장세동(무소속), 현경병(한나라당).

李-金의 '고래싸움' 속에 오히려 어부지리를 노려볼 만했던 민주당의 '젊은 피' 노관규(43)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퇴는 이들의 양자 대결 구도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盧 전 위원장의 공백을 메울 만한 인물조차 마땅치 않다. 시민단체 출신으로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이금라 지구당 부위원장만 해도 구청장 보궐선거에 더욱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李 부위원장은 지난해 지자체 선거에도 나서서 金 전 구청장에게 패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박치웅 민주노동당 지구당위원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상기 자민련 지구당위원장도 출마가 예상된다. 장세동(무소속) 전 대통령 경호실장도 거론되고는 있지만 출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누가 배신자냐="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다.재정자립도가 40%밖에 안되는 이 지역에 서울시 예산을 얻어다 주고 구의원들이 발목을 잡지 않도록 내가 도왔기 때문에 그동안 金 구청장이 순항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공을 모두 혼자의 몫인 양 생각하고,내가 한나라당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대결하겠다는 건 말이 안된다. 내가 정치적 실리를 위해 한나라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선거 때 어떻게 나를 비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하철 5호선 굽은다리역 인근에 위치한 지구당 사무실에서 이부영 의원을 만났다.金 전 구청장 얘기를 꺼내자 감정을 자제하기 힘든 눈치였다.차분하던 목소리가 다소 높아지며 "사람을 잘못 본 건 내 책임"이라는 얘기까지 했다.

金 전 구청장은 李 의원의 서울대 정치학과 12년 후배다. 金 전 구청장의 정치 입문과 구청장 연임에 李 의원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또 1995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민주당에 잔류한 뒤 한나라당으로 함께 옮기는 등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한 배를 타고 왔다. 특히 95년 金 전 구청장이 강동구청장에 당선된 후 3선 연임하는 동안에는 구 행정을 위해 '찰떡 궁합'을 과시해온 사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제 정치적 경쟁자가 됐다. '단체장 공천 배제'라는 기본 원칙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배신자' 李 의원을 꺾기 위해 金 전 구청장을 택할 공산이 크다.

金 전 구청장도 최근 명일동의 한 아파트 상가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출마 준비를 시작했다.

"인간적으로 李 의원에 대한 존경심은 변함없다.하지만 한나라당원 동지들과 맺어온 다양한 신뢰관계를 싹뚝 베고 떠날 수는 없었다. 이제 그분과 정치적 노선에 있어선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

그래도 金 전 구청장의 부담이 더 큰 것은 사실이다.강동을 지역에 출마하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당내 중진인 김중위 강동을 지역구위원장 때문에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강동갑에서 미리 출마 준비를 하고 있던 도전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특히 "지난 8월 박주천 사무총장의 권유로 이 지역 조직책 공천을 신청했다"는 이충범 변호사측은 경선이라도 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선거 직전의 경선은 당내 분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金 전 구청장이나 李변호사 모두 중앙에서 먼저 교통정리를 해주기 바라는 눈치다.

◇"이 지역 민심은 내가 안다"=고덕동.상일동.명일동.둔촌동.암사동 등 노후한 아파트 밀집지였던 이 지역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아파트 재건축 문제다. 후보들 모두 고덕지구의 아파트 재건축사업 추진을 가장 큰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8호선 지하철의 구리연결사업이나 암사대교 건설사업 등 교통문제도 주요 현안이다. 이부영 의원이나 김충환 전 구청장이 각각 입법부와 행정부의 경로를 통해 함께 추진해오던 일이기도 하다.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유권자들의 성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한나라당 지지성향이 높아진 것은 그간 추진돼 온 아파트 재건축 사업의 결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지역구 관계자는 "전체 유권자 18만4천여명 중 충청권이 22%, 호남출신이 18%, 서울.경기가 18%, 영남출신이 15%로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했던 암사동의 경우 재건축 이후 중대형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 아파트 재건축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金 전 구청장 측에 유리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金 전구청장은 "구청장으로서 온조대왕 기념사업을 마무리 못하고 나온 게 좀 아쉬운데 국회의원이 되면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면서, "지자체장으로서의 경험 및 정치행정학 연구(행정학 박사)를 통해 얻은 전문성과 비교적 젊다는(54년생) 것을 강점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李 의원은 "이 지역에서 20여년 살아온 인간 이부영에 대한 유권자들의 믿음은 변함없다고 확신한다"면서, "단편적인 공약보다는 서울시의 도시기본계획에 맞춘 장기적인 지역발전계획을 통해 정책적인 차별성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김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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