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감독 북한서 영화찍는다|세미다큐멘터리『아버지의 땅』|"아들 세대의 눈으로 본「분단」" 생생한 묘사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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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실향 2세대인 영화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를 출연시켜 북한에 있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 분단이 빚은 이산가족의 고통을 필름에 담는 세미다큐멘터리 제작이 시도되고있다. 통일원은 영화감독 박광수씨가 신청한 세미다큐멘터리『아버지의 땅』방북 촬영 계획을 승인했다.
박 감독은 지난 8월24일요아버지의 땅』제작의도 및 촬영안을 통일원에 제출했고 지난달 26일 통일원으로부터 북한 주민 접촉 승인을 받아냈다.
『아버지의 땅』은 영국의 권위 있는 민간 TV사인 CH4가 제작비 전액을 지원하고 북한과 구체적인 입북절차 및 허가도 맡는 특이한 방식으로 제작된다.
CH4 TV는 박 감독이 북한 주민 접촉 승인을 받아내는 동안 프랑스파리에 주재한 북한대표부와 수 차례 접촉,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CH4 TV는 특히 박 감독에게 방북 허가가 떨어지자 파리주재 북한대표부에 연락, 세부적인 촬영계획을 논의하겠다고 알려왔다.
『아버지의 땅』은 계획이 성사되면 한국영화제작팀이 북한에서 촬영하는 첫 필름이 된다.
16㎜ 40분짜리로 완성 후 CH4가 첫 방영을 하면서 세계각국 배급도 담당한다.
『아버지의 땅』은 분단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망향의 한을 품고 살아온 실향 1세대의 뼈저린 고통을 실향2세대가 그 한의 고향을 함께 찾아가 이산의 고통의 실체를 현장 확인하는 내용이다.
그렇게 해서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실향2세대, 나아가 북한땅이 고향이 아닌 분단2세대에게 냉전이데올로기를 배제한 화해의 차원에서 통일의 당위성을 심어주자는 것이다.
특히 박 감독은 아버지 박성곤씨(67)가 고향을 방문해 가족과 상봉하고 조상의 묘에 참배하는 과정을 담는 것으로 이 세미다큐멘터리를 구성, 실향2세대에게 분단의 비극이 관념적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실체적인 것임을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통해 더욱 사실적으로 보여주려 하고 있다.
박성곤씨는 평남 용강이 고향으로 한국전쟁 중 단신 월남해 강원도 속초에 정착, 망향의 한을 달래왔다.
『아버지의 땅』은 1남5녀 중 막내인 박씨가 고향을 방문, 일가친척을 만나보고 누이들이 시집간 평양 등지를 찾는 과정을 아들이 카메라로 따라간 다음 남으로 내려와 부자가 전쟁과 분단 및 이데올로기, 그리고 고향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솔직하게 교환함으로써 새로운 통일의 길을 찾아보자는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박 감독과 CH4 TV가 손잡고 이번 세미다큐멘터리를 추진하게 된 것은 박 감독의 영화가 수년 전부터 유럽지역에 알려지자 CH4가 자국의 프로그램인 『사우스(SOUTH)』에 방영될 작품 연출을 의뢰해 이뤄졌다.
『사우스』는 제3세계 영화감독들에게 소재 등 제작일체를 맡기고, 제작비와 방영을 책임져주는 유명프로그램으로 한국감독으로는 박 감독이 처음 참여하게 됐다.
박 감독은『철수와 만수』,『그들도 우리처럼』,『베를린 리포트』등을 통해 분단현실에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CH4의 제의를 받고 이번엔 분단의 현장을 찾는 세미다큐멘터리 연출을 시도한 것이다.
박 감독은『순수한 휴머니즘에 입각, 이번 필름을 추진했으므로 북한측에서 좋은 반응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땅』방북스태프는 모두 7명으로 박 감독 부자 외에 박기용(친형), 설가 이창동(스크립터), 영길씨(촬영)등이다.<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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