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해태 타자 완봉패 자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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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성급하면 화를 부른다. 플레이오프 4차전도 이 말이 그대로 입증됐다. 해태의 완봉패는 롯데 신예 염종석의 신들린 듯한 투구에 눌린 것이지만 타자들의 조급함에 의해 촉진됐다.
해태는 9회까지 36명의 타자가 등장했으나 염은 불과 1백14개의 공밖에 던지지 않았다.
염은 타자 1명당 3.2개의 볼을 던진데 불과한 셈이다.
해태타자들은 이날 초구를 때린 6명의 타자가 안타를 단 1개밖에 뽑아내지 못했다.
또 2구를 때린 타자는 4명, 3구째를 공략한 타자는 모두 12명으로 염종석이「승리의 대명사」로 불리기까지엔 이 같은 해태 타자의 조연 역할이 컸다.
해태타자들은 볼 컨트롤은 물론 슬라이더가 예리한 염을 상대로 볼카운트가 불리하게 몰릴 경우 안타를 뽑아낼 확률이 적다고 보고 성급하게 초구부터 방망이를 휘둘러댔다.
한편 염은 이 같은 해태타자들의 심리를 간파, 절묘한 컨트롤로 상대의 헛방망이질을 유도해 내는 영리한 투구로 해태 강타선을 요리했다.
통상 투수가 완투승을 뽑아내기 위해선 l백30∼1백40개의 투구수를 기록하는데 비해 이날 염은 투구수로 보아 최소한 3회를 줄여 7회까지 경기를 치른 것과 같은 정도의 체력만 소모된 셈이다.
따라서 해태타자들은 오히려 염이 체력을 비축하게 도와줘 5차전에서도 2∼3회 정도 더 던질 수 있는 빌미를 제공, 화를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남게 됐다.
산전수전 다격은 해태 주포 한대화가 삼진 3개를 당하는 등 해태 타자들은 19세 루키 염에게 농락 당해 롯데팀 전체의 사기가 오르는 반작용까지 초래해 최종전에서 부담을 가중시켰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을 잊은 듯 해태타자들은 바늘허리에 실을 매려다 완봉패의 수모를 당한 것이다.. 투수가 가장 싫어하는 타자는 풀카운트 끝에 파울볼만 쳐내는 선수인 것을 장타자들이 즐비한 해태가 알아야할 대목이다.【장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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