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보다 빠른 신도시 투기꾼 '대단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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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거주하고 있는 문모(44)씨는 최근 6년간 총 12차례에 걸쳐 신도시 후보지로 거론됐던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과 용인시 남사면 등에서 주유소 용지가 포함된 1만1300㎡ 규모의 토지를 매입했다. 시가는 52억원.

그런데 문씨가 동원한 부동산 취득자금은 지난 2001년부터 5년간 주유소 3곳을 운영하면서 세무당국에 신고한 사업소득 2억원과 사업자금 대출 35억원, 양도자금 6억원 등 43억원 뿐으로 9억원이 부족했다.

국세청은 이 같은 사례가 포함된 동탄신도시 및 주변지역의 투기꾼 112명에 대해 4일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날 소개된 부동산 투기사례를 보면 신도시 개발정보를 입수한 투기꾼들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껍데기'나 '통물건' 등 신종 '은어'까지 등장하는 투기수법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 무직자가 16억원 농지 매입 '투기백태' = 화성시 동탄면에 거주하는 원주민 이모(70)씨는 지난 3월 신도시 후보지로 거론되던 동탄면 소재 농지 7500㎡를 매입했다. 이 농지의 경우 시가 16억원 상당으로 추정되지만 이씨는 뚜렷한 소득이나 직업이 없고, 주변에 증여할 만한 가족도 확인되지 않았다.

국세청은 뒤늦게 농지를 취득할 수 없는 제3자에게 명의를 대여한 것으로 보고 조사대상자로 선정했다.

장모(50)씨는 지난 2005년 10월에 용인시 처인구에 갖고 있던 양돈농장을 김모씨 외 55명에게 소유권 이전 등기 없이 공유지분 형태로 양도했다. 이 과정에서 장씨는 근저당권만 설정하는 수법으로 양도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 과감성을 보였다.

동대문에서 의류상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48)씨는 과거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증여세 등을 크게 추징당하고도 또다시 부동산 투기를 저질렀다. 박씨는 용인시 모현과 분당 지역에 있는 20억원 상당의 농지(5000㎡)를 취득하면서 농업경영계획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부당한 투기수법을 동원했다.

◆ '통물건'-'지분쪼개기' 등 투기수법 총동원 = 일부 투기꾼들은 신도시 후보 지역에서 '껍데기', '통물건' 등의 은어를 사용하거나 '지분쪼개기'와 같은 신종 수법을 동원해 투기를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동산 투기꾼들 사이에서는 원주민 소유의 주택을 매매할 때 보상금과 입주권 모두를 매매 대상으로 하면 '통물건'이라고 하고, 이면계약을 통해 보상금은 투기세력이 갖고 입주권만 매매 대상으로 하면 '껍데기'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아울러 철거예정 다가구 주택 등을 매집한 후 다세대주택으로 전환해 세대별로 등기하는 '지분쪼개기'도 대표적인 투기수법. 일부 투기꾼들은 지분쪼개기 과정에서 미등기전매 등을 통해 양도세를 탈루해왔다.

국세청 관계자는 "입주권이나 보상금을 노리고 원주민 소유의 부동산을 이른바 '껍데기'나 '통물건'으로 부르며 매집하는 세력에 대해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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