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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바로잡습니다] 3.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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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첫 해인 올해는 경제 분야에서도 다사다난한 해였습니다. 전반적으로 경기가 가라앉은 데다 연초부터 SK 검찰 수사를 필두로 화물연대 운송거부, 대기업 정치자금 수사, 두산중공업.현대차 노사분규 등 사건도 많았습니다. 경제부와 산업부의 모든 기자가 보다 빠르고 정확한 경제기사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결과적인 오보나 부정확하고 치우친 보도도 적지 않았습니다. 1년을 반추하며 새해엔 보다 빠르고 정확하며 읽기 쉬운 기사를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편집자]

경제현상엔 대부분 이해당사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쪽의 얘기만 듣고 기사를 쓸 때는 그만큼 위험이 따릅니다. 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은 상대방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거나 취재원들이 불리한 얘기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 경우도 많아 확인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또 요즘은 경제현상이 단순히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사회 현상으로 번져 복합화.융합화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다각적이고 종합적으로 보여주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경제는 살아움직이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이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정확한 보도였지만 금세 상황이 바뀌어 오보가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기자들은 신속성과 정확성의 경계선에서 늘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어려움이 부실한 보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보의 함정=절망에 빠진 지방경제 현장을 보도한 '벼랑에 선 지방경제'(9월 29일자 종합 1면 톱, 경제섹션 3면 박스) 기사는 사실 확인이 미흡해 오보를 냈던 사례입니다. 현장 취재를 갔던 기자는 지방상공회의소 간부에게서 '다국적 기업인 바스프가 4천억원 규모의 제3차 화학공장 증설 추진을 중단하고, 대신 중국에 공장을 세울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기사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나 보도 직후 바스프는 공장 신.증설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취재원이 믿을 만한 상공회의소 간부였고 수치도 구체적으로 제시해 기자는 성급하게 이를 사실로 믿고, 해당 기업에 대한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9월 17일자 종합 1면 톱과 3면 박스로 나간 '대통령 강력한 리더십 필요'란 제목의 전경련 월례 회장단 회의 기사 역시 사실 확인이 불충분했던 사례입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가 끝날 무렵인 그날 오후 9시쯤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은 기자들에게 "회의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재계와 정부가 대립하던 당시 상황에 비춰볼 때 이 말은 재계 대표들이 정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예전 같으면 재계가 이렇게 심하게 정부를 공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참석자들 사이에서 "그렇게까지 심한 말은 없었다"는 이의가 나왔습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 내용을 관계자를 통해 전해들어야 하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직접 확인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올해 금융계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인수.합병(M&A)과 관련된 보도 중 결과적으로 오보가 된 사례도 있습니다. 보도 시점에는 확실했던 내용이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바뀌기도 하고, 보도가 나가면 양쪽이 협상을 깨는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11월 28일자 경제섹션 2면에 미국계 투자펀드인 칼라일이 보유하고 있는 한미은행 지분 매각을 위한 최종 입찰이 12월 15일께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입찰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8월 19일자 경제 2면에 영국계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이 외환카드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도한 기사도 결과적으로 오보가 됐습니다.

정부 고위층의 얘기만 듣고 보도했다가 독자들에게 혼란만 야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6월 5일자 종합 2면에 '김진표 재정경제부 장관이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도 양도소득세를 과세하는 방안을) 이달 중 세제발전심의회에 올리고 내년 중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썼습니다. 보도가 나간 후 정부 안팎에서 논란이 일자 정부는 슬그머니 '중장기적으로 검토한다'는 쪽으로 물러섰습니다. 확정되지 않은 정부 방침을 서둘러 보도하는 바람에 오보를 한 셈이 됐습니다.

10월 16일자 2면 머리기사로 쓴 '신용불량 96만여명 원금 50%까지 탕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산관리공사가 이틀 뒤 이를 이사회 안건으로 올릴 예정인 것을 취재해 단독으로 보도했지만, 기사가 나간 후 '신용불량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안건이 바뀌었습니다. 자산관리공사는 같은 달 31일 원금을 30%만 감면해주는 방안을 확정했습니다.

◇편파 논란=8월 7일자 종합 1면과 3면 '정부, 사측 대항권 보장 추진'제하의 기사 등에서 현대차가 연간 1백54~1백60일의 휴일.휴가를 써왔으며, 노사합의 결과 생산직 평균 연봉이 6천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얼마 뒤 노조 측이 항의를 해왔습니다. 자동차회사는 휴일에도 근무를 많이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연평균 1백일도 못 쉰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확인 결과 휴가 일수나 연봉이 이론적으로는 보도한 대로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얼핏 보면 노조가 휴일.휴가를 다 챙기면서 연봉은 6천만원까지 받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컸습니다.

정몽헌 회장의 사망 이후 현대그룹과 KCC(금강고려화학) 사이에서 벌어진 경영권 분쟁 기사도 편파 보도 시비에 시달렸습니다. 11월 11일자 경제섹션 1면 톱에 '정몽헌 회장 사망 1주일 만에 경영진이 스톡옵션 잔치'라는 제목으로 일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했습니다. 이사회 회의록을 단독 입수해 최대한 사실만을 보도했지만 일부 현대 측 인사는 심지어 KCC 측이 제공한 기사가 아니냐는 주장을 했습니다.

◇미흡했던 심층 보도=경제기사를 보도할 때는 복잡한 경제현상을 단순화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캐내는 '시각'도 필요하지만 이 현상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내다보는 '안목'도 필요합니다.

조만간 벌어질 일들을 충분히 점검하지 못하고 그때 그때의 현상에만 매달린 기사가 적지 않았습니다.

5월 28일자 경제섹션 2면에 LG카드 사장의 인터뷰를 게재하면서 "LG카드는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고, 최근 위기는 카드사의 자산 건전성이 나빠서라기보다 심리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했습니다. 6개월 뒤 LG카드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습니다. 당시 정부의 대책과 카드사들의 구조조정 내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됐다는 점을 간과해 독자들에게 부정확한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한 꼴이 됐습니다. 카드사 문제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취재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동산 문제도 안이하게 보도한 측면이 많습니다. 4.18 대책을 시작으로 10.29 대책까지 무려 일곱차례에 걸친 부동산 안정대책이 발표됐습니다. 그때마다 '땜질 처방'이라는 지적만 요란했지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소흘했다는 자성을 하게 됩니다.

◇오보 누명 벗은 특종=2월 13일자 사회면 머리기사로 '현대상선에서 보낸 의문의 괴박스를 극비리에 운송했다'는 현대택배 직원의 증언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한달 가까이 관련자들을 취재한 것이었습니다. 미디어오늘(2월 20일자)은 이 기사를 '현대상선 괴박스 괴담기사, 아니면 말고식 추측보도'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8월 초 검찰은 이를 사실로 확인해 주었습니다. 다만 괴박스를 배달한 차와 전달 장소까지는 정확했지만 전달된 곳이 북한이 아니고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라는 점이 기사와 달랐습니다.

경제.산업부

*** 김종수 경제부장.민병관 산업부장

"정확하고 쉬운 경제기사 싣겠다"

경제기사는 정확성이 중요합니다. 보도에 따라 경제적 이해가 엇갈리는 당사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지면을 제작하고 있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확인이 미흡해 생긴 오보이건 단순 오기이건 그 책임은 면할 수 없습니다. 중앙일보는 오보에 대해서는 크건 작건 반드시 정정기사를 낸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그렇다고 부정확한 기사가 끼친 결과가 다 바로잡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보도 못지않게 경제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복잡한 경제현상을 쉽고 간명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전문용어와 숫자들로 범벅이 된 어려운 경제기사를 독자들에게 던져놓고 정확성만 뽐내지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새해에는 정확하고 알기 쉬운 경제기사를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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