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라던 춘희는 실내화를 구겨 신는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혼이 난다. 자기 발보다 한참이나 작은 실내화를 신고 있었던 것이다. 티셔츠도 바지도 마찬가지다. 다음날 춘희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언니 옷을 입고 왔단다. 어색한 패션쇼는 그날로 끝이었다. 말괄량이로 돌아온 춘희는 카드치기로 거금 삼천 원을 마련한다. 한턱 내라는 말에 춘희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궁궐을 기대했던 '나'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산꼭대기의 허름한 철거촌. "우리 공주님 왔어?" 춘희를 반기는 사람은 병으로 누워있는 아버지다.
춘희는 언니의 드레스를 꺼내 입고 춤을 춘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색색의 불빛 아래서 춘희는 진짜 공주 같다. "커다란 궁전에서 살지 않는다고 공주가 아닌 건 아니야. 예쁜 드레스가 없다고 공주가 아닌 건 아니야. 하지만 이 세상에는 공주가 꼭 있어야 해. 아버지에게도, 우리 공주님, 하고 부를 공주가 꼭 필요 하다구.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도 공주가 필요해!"
춘희의 집이 철거되고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지금 춘희의 소식조차 모른다. 그러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씩씩했던 춘희 덕분에 '나'는 적극적인 아이가 되었다. 작가에게도 춘희 같은 친구가 있었나보다. "그 애가 생각나면 착하게 살고 싶어져요. 그 애처럼요. 이 세상에 그런 사람 하나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 작가의 말이다. 누구나 친구가 필요하다. 자신이 가진 희망의 힘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친구면 좋겠다.
김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