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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포털 규제 어떻게 해야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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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부가 포털 규제에 나서기로 한 것과 관련, 29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포털 규제 방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배영 숭실대 교수, 한창민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 강치원 강원대 교수(사회자), 민경배 경희대 교수, 배지은 인터넷콘텐츠협회 사무국장. [사진=김상선 기자]

정보통신부가 법.제도를 정비해 포털업체의 규제에 나서기로 했다. 미디어 측면에서나 산업 측면에서 포털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거기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요 포털업체를 대상으로 불공정 및 담합 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고, 정보통신부 산하 통신위원회도 포털업체의 불공정 거래 및 이용자 보호정책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 같은 규제 움직임에 대해 "당연한 조치"라는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자율 규제로도 충분하다"는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규제에 찬성하는 민경배 경희대 NGO학과 교수, 배지은 한국인터넷콘텐츠협회 사무국장과 지나친 규제를 경계하는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한창민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이 30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강치원 강원대 사학과 교수의 사회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강치원=포털의 사회적 책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경배=포털은 신문이나 방송보다 이용자가 더 많아 막강한 언론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포털은 언론의 기사 생산과 유통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블로거를 기자로 참여시키거나 방대한 기사 소스를 갖고 포털 의도대로 편집해 새로운 메시지를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은 강제된 것이 전혀 없다. 제도적으로 슬기롭게 규제해 나가야 한다.

▶배지은=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를 예로 들면 하루 2000만 명이 드나든다. 온라인 뉴스의 73.7%를 독점하고 있다. 기존 언론사 온라인 뉴스보다 10배가량 이용자가 많다. 실질적으로 미디어로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배영 교수=인터넷이 일상생활에서 중요해지면서 개개인의 포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포털이 커졌다고 기존의 언론을 재단하던 잣대로 동일하게 규제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내 인터넷 비즈니스는 이제 시작한 지 10년 정도밖에 안 됐다. 인터넷 기업의 정의를 내리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창민 사무국장=미디어는 자신의 주의나 주장을 펼치지만 포털은 그렇지 않다. 또 포털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 곧 언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견해에도 동의할 수 없다. 포털의 뉴스는 모두 기존 매체에서 갖고 온 것이다. 포털은 뉴스나 논설을 직접 만들어내지 않는다. 포털이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느라 덩치에 걸맞은 책임을 신경쓰지 못한 것은 인정한다. 포털 사업자들도 이제는 사회적 규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자율 규제여야지 타율적인 법적 규제여서는 안 된다.

▶강치원=포털을 언론으로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민경배=최근의 미디어 환경은 뉴스를 누가 만드냐보다 어떻게 배치하고 유통시키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이 같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주도한 것이 포털이다. 그런데 '우리가 뉴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니 언론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과거 미디어 환경에선 대중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표출할 수 있는 채널을 가진 기관이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뉴스가 곳곳에서 수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많은 뉴스 중 무엇을 뽑아서 유통시키느냐 하는 게 더 큰 의미를 갖게 됐다. 언론 권력이 기존엔 생산과 관련됐다면, 현재는 편집권 행사자에게 쏠리고 있다. 그 헤게모니를 장악한 게 포털이다. 따라서 포털은 당연히 미디어이고, 언론 권력이 실재하고 있다고 본다.

▶한창민=포털이 언론 권력자인데 왜 이렇게 힘이 없나(웃음).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뉴스의 유통이 중요해졌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포털은 신문사에서 받은 기사 내용은 물론 제목 한 줄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다만 제목 글자 수를 맞추느라 손보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기준이 마련된다면 따르겠다. 기존 언론은 의무 이외에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등 권리도 갖고 있다. 포털을 언론으로 분류한다면 권리도 줘야 한다. 손발은 다 묶고 의무만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배영=언론 권력이라는 말 자체엔 가치 판단이 내포돼 있다. 포털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포털이 뉴스를 서비스하면서 편집하지 않을 수는 없다. 포털은 뉴스 편집 과정에서 모니터링도 하고, 이용자위원회 같은 것도 만드는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더 확실한 장치를 마련할 필요성은 있을 듯 싶다.

▶민경배=포털의 뉴스 서비스에선 매체가 오프라인 시장에서 갖고 있는 힘, 즉 역사나 독자 수 등이 무의미해진다. 포털에선 상단에 노출되느냐 여부에 따라 중요도가 결정되고 댓글 수가 달라진다. 다시 말해 포털의 편집권에 따라 매체가 생산한 기사도 비로소 의미를 갖고 네티즌의 선택을 받게 되는 상황이다.

▶한창민=포털은 언론사에서 콘텐트를 돈 주고 사온다. 그걸 갖고 정해진 원칙대로 편집할 뿐이다. 계약 조건에 '제목은 변경하지 않는다거나 편집은 포털로 들어오는 순서대로 한다'는 내용 등을 명시하고 그대로 하고 있다.

▶강치원=포털의 명예훼손이나 음란물 유통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민경배=현재 불거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하나의 법으로 규제해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 법으로 포털의 다양한 서비스를 모두 규제할 수는 없다. 기존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물론 새로운 법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한창민=규제가 필요하다면 효과가 있는지 따져 법적 또는 기술적인 규제안을 만들어야 한다. 인터넷기업협회 차원에서 자율 규제 방안을 논의 중이다. 뉴스 유통이나 음란물 노출 문제 등을 포함해 업체 스스로 규제 방안을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올해 안에 결과를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명예훼손 문제를 포털이 스스로 해결하라는 식은 말이 안 된다. 포털이 알아서 내용을 검열하고 삭제하라는 것인데 이는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법원도 어려워하는 일을 포털이 자율적으로 할 수 없고, 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강치원=포털이 명예훼손이나 음란물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은 기울이고 있는 것인가.

▶배영=야후에 최근 음란한 동영상이 떴을 때 이용자들이 예전과 달리 포털에 항의하고 이런 짓 하지 말자는 댓글을 많이 달았다. 사이버 공간에서 일종의 자정 노력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용자 인식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포털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일종의 사이버 윤리교육이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이용자 인증제를 도입한다든지 해야 한다. 최근의 선플(선의적 댓글) 운동도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기술이 발달해도 모든 게시물에 대한 사전 모니터링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현재 사후적으로 80% 정도는 모니터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전 모니터링을 하면 이는 검열이 되기 때문에 권장하고 싶지 않다. 최근 사건을 계기로 정부기관과 포털 간에 일종의 핫라인을 구축했는데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민경배=개인이 명예훼손을 당할 경우 포털에 신고해도 신속하게 해결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순식간에 퍼져나가곤 한다. 이용자가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이용자는 혁신적인 개선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포털이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으니 이용자가 법적 장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포털이 성장에만 몰두했지, 이 같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온 게 사실이다. 악성 댓글은 수년 전부터 얘기돼 왔다. 포털이 실명제 등을 도입하는 정책 변화를 보여준 것은 최근 일이다. 왜 그동안 할 수 있는데도 안 했는가. 마찬가지로 지금도 개선할 수 있는 부분들을 다 하고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법의 철퇴를 맞게 된 것이다.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했다면 오늘 같은 상황까지는 안 왔을 것이다.

▶강치원=요즘 대형 포털과 콘텐트 제공업체(CP) 간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대형 포털이 불공정 계약관계를 강요해 일부 CP는 대형 포털을 '받들어 모셔야 할 형님'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배지은=CP들은 포털과 계약해도 대부분 내용 공개를 꺼린다. 일부 CP는 계약서도 없이 일방적으로 콘텐트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인터넷업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돼버렸다. 좋은 콘텐트가 나오기까지 CP는 비용을 많이 들여야 한다. 그런데 콘텐트에 대한 수익은 포털과 인터넷망 사업자가 대부분 가져간다. CP가 질 좋은 콘텐트를 계속 만들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선 포털에서 콘텐트를 클릭하면 원래 그 콘텐트를 생산한 사이트로 이동하는 아웃링크를 일정 비율 이상 도입하라는 식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외국에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창민=대부분 포털은 자체 법무팀을 가동해 계약상 불공정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개선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현재 조사 중이니 불공정 사례가 적발된다면 고쳐 나가겠다. 구조적인 문제라 지적했는데 포털도 CP와 상생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포털이 CP가 없다면 어떻게 돈을 벌겠는가. 포털의 검색 서비스가 자체 데이터베이스 중심으로 이뤄지고, 광고에 좌우된다는 지적과 관련해 포털은 이미 아웃링크를 시행하고 있고, 이를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다.

▶민경배=포털도 CP와 상생하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포털과 CP가 바라보는 상생이 다른 것 같다. 포털은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콘텐트를 구입해 서비스하면 그만이라는 입장이지만, CP는 트래픽은 포털이 다 가져가고 콘텐트 원가만 일부 받는다고 생각한다. CP는 포털에 몰리는 트래픽이 분산돼야 자체 광고 수익을 올리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리=장정훈 기자<cchoon@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