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돈 없으면 공부 못 하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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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에선 21세기 들어 '교육격차'란 말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른바 명문대에 입학하는 부유층 자녀가 많아지고 저소득층 자녀들은 줄어 교육에 의해 사회적인 부.명예가 세습되고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현상이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대와 비교되는 도쿄(東京)대가 시발점이 됐다. 도쿄대 재학생의 상당수가 부유층 자녀였기 때문이었다. 2002년 도쿄대 학부모의 평균 연 수입이 1000만 엔(약 8000만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지난해는 도쿄대 학부모의 절반은 연간 수입이 950만 엔 이상이고 20%는 1250만 엔 이상인 반면 14%는 450만 엔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 950만 엔이면 일본 회사원 평균 연 수입(437만 엔)의 두 배 이상이다.

근본 이유는 공립고 붕괴에 있었다. 일본은 학생이 고교를 선택해 지원한다. 그런데 연간 학비가 공립고의 8배 이상인 사립고(최하 80만 엔 이상)를 택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었다.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1960년대만 해도 47개 지역의 주요 공립고는 공교육의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평준화가 강화된 후 공립고가 무너졌다. 도쿄 히비야(日比谷)고교의 경우 64년 도쿄대 합격자수가 193명이었으나 93년에는 한 명으로 줄었다. '공립고=대학 못 간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러자 학생.학부모들이 갈수록 외면했다. 2005년에는 규슈(九州) 지역에서 사상 처음 공립고 정원 미달 사태까지 벌어졌다. 반면 사립고는 더욱 인기를 끌어 도쿄대 재학생의 60% 이상은 사립고 출신이라고 한다. 이러자 "예전에는 가난해도 학교에서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교육에 힘 쏟는 부유층과 일찍 포기하는 가정으로 양극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그러다 도쿄도가 2001년 공립고 살리기에 나서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도쿄도는 평준화를 일부 철폐하고, 히비야 등 7개 공립고를 입시 중점고로 정했다. 대입 결과가 좋아지자 학부모들의 평가도 달라졌다. 2년 전부터 가고시마(鹿兒島).가나가와(神奈川)현 등 다른 지역들이 뒤따랐다. '공립고의 복권(復權)'이란 말이 나왔다. 공교육이 살아야 우수한 저소득층 학생들이 활로를 찾고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일본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서울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균형선발제를 강화한다고 하는데, 정답은 아니다. 근본적인 답을 찾아야 한다.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교육이 무너진 지 오래다. 그 결과 사교육비 부담은 많아지고, 사교육비 양극화 현상도 심해진다. 특수목적고나 자립형 사립고는 일반고보다 학비가 비싼데도 갈수록 인기다. 박찬모 포스텍 총장은 본지와의 인터뷰(3월 24일자)에서 "한국의 교육은 평준화 때문에 망가졌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부를 통한 인생 역전의 기회도 앗아갔다"고 말한 바 있다. 대입은 어떤가. 정부는 툭하면 규제하고, 대학 자율권은 거의 없으니 수능.내신 위주의 획일적 입시로 변했다. 이러니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고, 시험 훈련을 많이 받을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자신들이 교육격차를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을 생각이나 해봤는가.

오대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