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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늙음을 저주하는 노인들의 세상, 섬뜩하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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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 달쯤 전인가, 친구한테 들은 얘기다. 친구가 다니는 피부관리실에는 일주일에 1~2회씩 얼굴 마사지를 받으러 다니는 30대 중반의 청년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피부관리에 대한 그의 변(辯)이 재미있다. "40대 중반이 됐을 때 눈가에 (지방이 처져 생기는) '심술주머니'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그것만 없어도 5년은 너끈히 젊어 보일 수 있다는 게 이유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여성들도 선뜻 구입하지 못하는 고가의 아이크림을 지성껏 바른다. 10년을 내다보는 투자다.

요즘 중년 남성들 사이에 '노무족'이라는 말이 유행이란다. 나이보다 젊게 꾸며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니라는 뜻에서 '노 모어 엉클(No More Uncle)'이다. 이런 남자들은 양복 정장에 흰색 면양말을 신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흔히 여성들이 뒤에서 '천인공노할 패션'이라고 쑤군대는, 카키색 체크 바지 위에 자주색 줄무늬 점퍼를 걸치는 식의 무신경과도 거리가 멀다.

노무족의 유행은 안티에이징, 즉 반(反)노화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늙는 건 자연의 이치이나 늙어 보이는 건 인력(더 정확히는 시간과 돈)으로 어찌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안간힘이다. 이게 심해지면 노화기피증(Aging Phobia)으로 나타난다. 좋은 예가 흰머리다.

흰머리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심리는 '인생수업'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했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리 5단계'와 비슷한 코스를 거친다. 처음엔 부정이다. "이건 흰머리가 아니야, 새치일 뿐이지." 다음은 분노다. "왜 하필 나한테 벌써 흰머리가?" 그러고는 타협("할 수 없다, 염색하자")→우울("이제 나도 늙었구나")→수용("더는 염색으로 감출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무시하자")으로 옮겨간다. 수용했다 하더라도 우울함이 완전히 가시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 '늙기 싫다'는 감정이 늙음, 나아가 노인에 대한 혐오로 발전할 수 있다, 는 건 나만의 과도한 걱정일까. '어려 보여요' '젊게 사시네요' '누가 아줌마라고 하겠어요'라는 말이 찬사를 넘어 도달해야 하는 '목표'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늙음은 그 자체로 흉일 것이다. 비만이 이미 게으름과 자기관리 부재의 상징이 돼버렸듯이.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이 조부모나 이웃 노인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호의적일 리 없을 것이다.

언젠가 일흔 살이 다 된 우리 어머니가 "지하철에서 노인이 앉아 있으면 옆에 가기 싫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노인도 노인을 싫어하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온다는데, 사방천지에 '내가 노인인 것을 저주하는 노인'이나 '40~50대처럼 보이는(또는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70~80대 노인'으로만 가득하다면? 글쎄, 어떤 SF영화가 묘사하는 디스토피아가 이보다 더 오싹할까.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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