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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MBC청룡 원년멤버, 어디서 무얼 할까?

중앙일보

입력

MBC청룡 초창기 멤버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당시 활동 상황과 근황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투수
 
1.하기룡 = 부산 출신으로 고교 3학년 때 부산고에서 배재고로 전학와서 이광은과 함께 배재고 전성시대를 열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실업팀 상업은행으로 일찌감치 입단해 성인 무대에서도 국가대표의 주축 투수로 활동했다. 초창기 MBC 부동의 에이스로 활약했고 1989년 은퇴하기까지 총 50승16세이브를 기록. 현대와 한화 등에서 투수 코치를 하다 현재는 모교인 배재고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2.이길환 = 82년 개막전에서 복통으로 등판 못한 에이스 하기룡을 대신해서 역사적인 첫 게임에 선발 등판했던 언더핸드 투수. 선린상고 시절부터 내노라하는 전국의 초특급 투수들(최동원·김시진)과 맞붙어 뒤지지 않았던 서울의 간판 투수였으나 이상하게 전국대회 결승전에서는 부상 등의 이유로 우승과는 인연이 멀었던 불운의 투수였다.

연세대 졸업후 곧바로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MBC에 입단했고 90년 은퇴하기까지 총 44승을 올렸다. 특히 2년차인 83년에는 무려 15승을 기록하면서 에이스급으로 발돋움했다. 은퇴 후 LG의 프론트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췌장암 말기로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3.유종겸 = 초창기 거의 유일한 좌완 투수로 활동했다. 지금 같으면 프로 입단도 힘들 만한 170㎝도 안되는 키로 당시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단신이었지만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큰 활약을 했다. 서울 장충고와 중앙대를 졸업한 후 상업은행에 있다가 MBC 창단 멤버로 합류했는데 당시 좌완 투수가 귀하던 시절이라 국가대표에 단골로 뽑혔고 특히 한국이 처음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77년 슈퍼월드컵 우승 멤버다.

90년 LG로 간판이 바뀐 첫 해까지 뛰고 은퇴했으며 총 57승을 올렸고 이는 당시까지 좌완 최다승이었다. 은퇴 후 LG·SK·한화 등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원광대 코치로도 잠시 재직했고 현재는 야인 생활을 하고 있다.
 
▲포수
 
1.김용운 = 유승안이 공격형 포수였다면 김용운은 수비형 포수로 많은 활약을 했다. MBC청룡에서는 3년간 활동했고 85년 연봉 협상에서 구단과 갈등이 생기면서 롯데 포수 심재원과 맞트레이드돼 90년까지 나머지 선수생활은 롯데에서 보냈다.

현재 위례정보산업고로 이름이 바뀐 천호상고 출신으로 남들보다 고교를 3년이나 늦게 졸업할 만큼 어린시절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동문세가 약하다보니 지도자로 성장할 기회는 얻지 못했고 현재는 골프 레슨프로 생활을 하고 있다.
 
▲1루수
 
1.김바위(김용윤) = MBC 시절에는 김용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나 뒤에 태평양으로 이적한 후 이름을 김바위로 개명해서 그 이름이 더 유명해졌다. 배명고 시절에는 투수겸 1루수였고 졸업 후 농협에서 타격좋은 1루수로 활동했다. 뒤에 김상훈이라는 걸출한 1루수가 입단하면서 자리를 잃어 85년 청보로 트레이드됐고 91년 은퇴했다. 현재는 SK의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다.
 
▲내야수
 
1.김인식 = 당시 팀에서 이종도 다음으로 고참급이었다. 내야수로 작은 키와 약한 파워를 투지와 스피드로 극복한 대표적인 허슬플레이어. 처음에는 3루수로 출전했다가 시즌 중반에 이광은이 군에서 제대해서 합류하자 3루를 내주고 2루로 전향했다.

대표적인 프로야구의 2루수로 활약했고 은퇴 무렵에는 다시 3루수로 복귀하기도 했다. 모교의 후신 격인 청원고에서 감독 생활을 했고 2006년에는 다시 LG로 돌아와 1년간 2군 감독을 지내다가 시즌후 해임됐다. 고려대 4학년 김준 투수가 아들.
 
2.이광은 = 군 제대를 기다리느라 원년 초기에는 합류하지 못하다가 제대와 함께 김인식을 2루로 밀어내고 3루수로 출전해서 국내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배재고와 연세대 재학 시절에는 꽤 유명한 투수로 알려졌을 만큼 투타에 능했던 만능 선수로 프로 입단 후에는 타격에만 전념했다.

홈런왕을 한번도 배출하지 못한 MBC와 LG 역사상 가장 홈런왕에 근접했던 선수로 당시 잠실 구장의 크기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홈런왕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대단한 파워를 자랑했다. 2000년 45세라는 젊은 나이로 MBC 선수 출신으로는 첫 감독 자리에 올랐으나 저조한 성적으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후 오랜기간 야인 생활을 하다 2005년 모교인 연세대 감독에 취임해서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야수
 
1.이종도 = 개막전 만루홈런의 주인공이라는 강렬한 후광으로 초창기 대표적인 강타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당시 팀내 최고참일 만큼 전성기가 지나있었고 결국 MBC에서 3년, OB로 트레이드 되어 3년간 선수생활을 하고 은퇴했다. 중앙고와 고려대 출신으로 학창시절의 포지션은 포수였다.

제일은행 시절 김우열과 랑데뷰홈런의 명수로 이름을 알렸던 거포출신. 은퇴 후 OB·태평양·LG·쌍방울 등 많은 팀에서 코치 생활을 했으나 별로 길지 못했고 2000년에 모교인 고려대의 사령탑을 맡아 연세대 감독인 이광은과 경쟁했고 2006년말 스스로 사임했다. 올해 프로팀 감독을 내심 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현재는 야구해설자로 변신했다. 

2.송영운 = 원년 MBC의 부동의 중견수로 빠른 다리와 타격능력을 보유한 선수였지만 프로에서는 그렇게 큰 존재감은 보이지 못했다. 장충고를 졸업한 후 농협을 거쳐 88년까지 선수생활을 하다가 은퇴했다. 은퇴 후 현재는 사회인 야구팀을 운영하면서 직접 선수로도 뛰고 있다.

3.신언호 = 아마시절 포수로 유명했는데 MBC에 포수가 많다보니 프로생활은 외야수로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강견으로 최고의 외야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이광은·하기룡과 함께 배재고 동기로 이광은과는 연세대에 함께 진학했다. 90년 LG로 이름이 바뀌고 1년을 더 뛴 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LG·현대·SK 등 많은 팀에서 코치로 재직했고 현재는 야인생활 중인데 2007년에 LG코치로 컴백설이 있었지만 이뤄지지는 않았다.

pcrang01 [blog.naver.com/pcrang01/]

*이 글은 블로그 플러스(blogplus.joins.com)에 올라온 블로그 글을 제작자 동의 하에 기사화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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