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단 "일작가 모방" 일파만파|장정일·김수경씨등 박일문씨에 제소당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일본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의 젊은 문단을 들쑤셔 놓고 있다. 올초부터 일기시작한 한국의 일부 젊은 작가들의 하루키 영향설은 표절시비로 번지더니 마침내 법정으로까지 가 한국문단의 자존을 더럽히기에 이르렀다.
「오늘의 작가상」올해 수상작가 박일문씨는 수상작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 하루키의 표절이라 주장한 시인 장정일씨, 그리고 이를 게재한『문학정선』발행인 김수경씨등을 지난달20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등 혐의로 대구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극일을 외치면서도 문화적으로 한없이 일본에 침식당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며 문단내에서 진행되던 일본문학영향, 혹은 표절시비가 법정으로까지 간 것이다.
사회주의권 몰락과 민중운동문학권의 쇠퇴로 90년대 한국문단은 한없이 가벼워졌다. 80년대 위세를 떨치던 사회개혁, 혹은 도덕성을 주장하는 문학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그와 함께 언어예술적 미학에 집착하는 문학도 안읽히는 시대가 됐다.
읽히는 것은 결코 본격문단에 편입되기 어려운 역사인물소설들과 감각적 대중취향의시·소설들 뿐이다.
이러한 문단·독서상황에서 시인 장정일·장석주·하재봉씨등이 일련의 사적소설을 발표하며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끌었다.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1인칭 화자를 내세워 작가 자신의 젊은 시절이나 현재의 감상을 가볍게, 혹은 일기체로 써나가는 이들의 작품은 그러나 작품의 세계관·구성·문체등에서 하루키의 영향권에 놓인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문단 일각에서 개탄스럽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본격적인 표절시비를 부른 작품은 금년도 「작가세계문학상」수상작인 이인화씨의 장편『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다.
문학평론가 이성욱씨는 『내 작품은 기존의 여러작품에서 따와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혼성모방기법을 취했을 따름』이라는 작가의 주장에 대해 「명백한 표절행위」라고 주장했다.
한편 하루키의 작품을 면밀히 분석한 이성욱씨는 장정일·장서주씨의 작품과 하루키의 작품이 유사하다고 일련의 평론을 통해 밝혔다.
회상적으로 사건들을 동떨어져 교차시켜가는 구성, 감각적문체, 카셋·비디오·현대음악·프리섹스등 산업사회의 도시적 감각성등 하루키와 이들 작가들의 작품사이에 강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정일씨는 평론「베끼기의 세가지 층위」(『문학정신』·7, 8월호)에서 『표절된 문장만 가지고 작가의 윤리를 문제삼는 것은 더 이상 무익하다』고 전제한 뒤『주인공의 세계관 없는 해프닝만 전개되고 있는「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문장과 세계관에 있어 하루키의 표절』이라 주장했다.
한편『신예작가들이 한결같이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아무런 윤리적 문제, 문화적 차이의 문제제기 없이 수용·모방·표절·인용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등 시인 김혜순씨,평론가 김병익·김명인·이성욱씨등이 최근 발간된 문예지들을 통해 하루키에 물든 가벼운 신세대 소설들을 계속 질타하고 있다.
이같이 문단내에서 하루키 영향·표절공방이 비평행위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과정에서 돌연 고소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박일문씨는『우리 물적토양에서 나온 우리 신세대 문학을 옹호하기 위해 법정으로 갔다』며 장정일·김병익·김혜순·김명인씨등의 비평에 낱낱이 반박하며『소설이 뭔지 제대로 아는 비평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박씨를 오늘의 작가상수상자로 강하게 민 평론가 이남호씨는 『80년이후 우리사회의해체현상을 부권에의 도전과 거부→편모슬하에서의 방황·가정 자체의 거부로 볼 때 가정이 완전치 해체될 시점에서 20대를 시작하는「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새로운 우리세대를 치열하게 그린 90년대적 소설』이라며 『하루키의 표절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경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