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분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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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필자가 신나 천년의 고도경주의 분황사 송다에 대한소문을 들은 것은 동양화가 김덕중 화백으로 부터다. 그는 일몰 무렵 서산에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분황사의 툇마루에 앉아 한가로이 음미하는 송다는 아주 일품이라 했다. 특히 한창 무더울 때 승방에서 대발을 드리우고 고운 벗을 청해 찻잔 가득한 솔 향기틀 음미하다보면 어느 곁에 더위조차 가신다고 했다.
한때 강원도 명주군 왕산면 대기리와 재도리에 기거하던 종남 스님도 송다를 담아 두셨다가 인연이 닿는 손님들에게 선물하시곤 했다. 송차를 만들기 위해 솔잎을 채취할 때는 소나무의 동쪽가지에 난 솔잎을 택하는 것이 좋다. 기왕이면 기의 영향을 고려하자는 것이다. 소나무도 해송은 안되고 가급적 공해의 영향이 없는 심산의 참 솔이 좋기 때문이다. 음력1월과 솔가지에 새순이 돋는5월 중순∼6월초 솔잎 끝의 거뭇거뭇한 부분을 제외하고 솔잎만을 잘 뽑아 항아리에 넣고 여기에 끓여 식힌 물을 붓고 밑 봉해 그늘진 곳에 저장한다. 약1백일이 지나면 풋풋한 솔 향에 달콤한 맛과 새큼하면서 떫은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좋다. 장복하면 심장의 기능도 강화시켜준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있는 경주는 신라의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역사공원으로 살아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볼거리가 무궁무진한 가운데 우선은 불국사 경내를 여유롭게 산책하며 조상들의 숨결을 호흡하고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현대인의 것에 맞추어 보는 게 좋다.
송차의 그윽한 맛에 매료되고 분황사 약사여래보살의 노을진 저녁하늘을 가르는 범종소리에 마음이 화평해지면 문득 동동주 한잔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이럴 때 찾아 갈 수 있는 곳으로「목화토금수」란. 민속주점(034543-0933)도 낭만적인 곳이다.
경주시내에서 불국사 방면으로 가다 남산의 통일암에 들르면 주지인 비구니 홍인스님이 있는데 작설차와 별도로 송차를 직접 담아두고 있으므로 차 손님으로 찾아가 차 향과 함께 인생의 참 맛을 음미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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