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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소년원생의 '눈물 젖은 가정의 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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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화분을 놓았다. 차가운 창살 너머로도 햇볕은 쏟아져 들어온다. 화분에 쏟는 인수의 관심은 각별하다. 틈이 나면 물을 주고 또 얼마나 자랐나 유심히 관찰하기도 한다. 정 붙일 곳 없는 팍팍한 생활 속에서 무럭무럭 커가는 녀석을 보며 인수는 무슨 생각을 할까 ▶ 동영상 보기

대구 읍내동의 대구소년원(읍내정보통신학교). 폭력.절도 등의 죄를 짓고 법원으로부터 보호처분을 받은 12~19세 아이들이 6개월간 교육받는 곳이다. 현재 9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 영상 부문 변선구 기자가 소년원을 세 차례 방문해 이들의 일상을 취재했다. 다음은 열다섯 살 인수군의 이야기다.


종이학 천 마리를 접었다. 아빠와 함께 살 수 있기를 빌며….


고입검정고시 합격증을 들고 아빠에게 카세이션을 달아 드리고 싶었다. 인수는 일기장에 '아빠 너무 보고 싶어요'라고 적었다.


꿈꾸던 외출이 좌절됐다. 소년원 생활관 사물함에 적혀 있는 '나 우리집에 보내도'라는 낙서조차 보기가 싫어졌다.

김인수(가명.15.특수절도). 부모님은 인수가 7살 때 이혼했다. 아빠는 직장 일로 항상 바빴고 명절 때나 돼야 한두 번 만날 수 있었다. 엄마는 가끔 학교 앞으로 찾아왔다. 그것도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였다. 피자 한 조각을 함께 먹은 것이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할머니 손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생일은 물론 운동회나 소풍 때도 가족과 함께한 기억이 없다. 집을 나가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거리를 배회하며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만났다.

"중1 때 처음으로 가출했어요. 친구들과 자취방을 구해 살다 보니 돈이 필요했고 도둑질도 여러 번 했어요."

인수는 2006년 12월 오토바이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혀 이곳에 왔다. 인수는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엄마의 존재를 부정하고 아빠를 미워했지만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수는 모범 학생으로 선발돼 5월 7일부터 4박5일간 극기훈련에 참가했다.

5월 14일에는 고입검정고시 합격증도 받았다. 어릴 적 생각했던 카레이서의 꿈은 접었지만 이제 정비 기술을 배워 가게를 연다는 계획도 세웠다.

"두 번 다시 올 곳이 아닙니다.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나가면 아빠 모시고 열심히 살 거예요."

5월 15일 인수는 학교에서 특별한 외출을 허락받았다. 모범적으로 생활한 덕분이다. 고입 검정고시 합격증과 늦었지만 아빠에게 드릴 카네이션도 준비했다. 어버이날 한 번도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 드려 본 적이 없는 인수다. 아침부터 인수의 얼굴이 밝았다. 한나절의 짧은 시간이지만 5개월 만의 외출이다. 늘 말썽만 부리던 아들이 아빠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긴 것이다.

"아빠를 만나면 꽃도 달아 드리고 이야기도 많이 할 거예요."

외출을 한 시간 앞두고 뜻밖의 일이 생겼다. 아빠로부터 바쁘다며 외출을 나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인수는 생활관 벽에 힘없이 기대 눈물을 훔쳤다.

지켜 보는 선생님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소년원생들의 재범률이 높습니다. 가정.학교.사회가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따듯하게 맞아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정체성을 찾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읍내정보통신학교 김기범 계장은 말했다.

2006년 법무부 보호소년 가정환경별 현황에 따르면 소년원생의 결손 가정 비율은 64.8%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님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인수는 울고 있었다. 지난 다섯 달 동안 꿈에도 그리웠던 집이다. 그날 인수는 일기장에 "아빠! 난 정말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라고 적었다. 인수는 "아빠가 너무 바쁘셨나봐요…"라며 종이 카네이션을 꼭 쥐었다.

글.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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