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총재 체제의 의미와 과제(권력이동: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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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변황 부응하는 개혁 필요/집권당 정비·내부결속 급선무/쇄신의 구체적 실체 제시해야
민자당이 28일 김영삼총재체제로 새롭게 출발했다. 김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문민시대와 변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집권에 성공하든 안하든 두개의 명제는 차기집권세력의 중요한 과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김 총재의 취임은 5·16후 31년만에 군인출신이 아닌 순수민간인 출신이 집권여당의 최고책임자에 올랐다는 점에서 우리 정당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경제 등 각 분야에서 침윤한 군정의 그림자를 씻어내는 계기로 작용할게 틀림없다.
김 총재는 그의 정치행로 거의 대부분을 반정부 투쟁에 앞장서온 야당출신이다. 그런 그를 집권 여당이 총재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과정이야 어떻든 일단 정권교체에 버금가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변화를 어떻게 한차원 높은 선진정치문화로 연결시키느냐는 김 총재와 민자당에 달려있다. 김 총재는 『변화의 시대를 연다』는 취임사 제목이 시사하듯 새로운 변화에 대한 국민의 갈구에 부응할 뜻을 강력히 천명했다. 그러나 김 총재는 변화의 실체에 대한 원론적 입장만 밝혔을뿐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 점이 당면한 그의 최대과제중 하나다.
김 총재는 후보단계에서 권력의 축을 청와대에서 당으로 옮겨놓는 첫 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이동통신사업자선정 번복과정을 통해 통치권에 엄청난 타격을 받은 노 대통령이 남은 6개월여 임기를 원만히 마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면서 동시에 차별화를 성공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를 비롯해 임기말 현상에 편승한 혼란과 무질서를 범여의 이름으로 추스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추진해온 민주화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부작용은 김 총재를 무겁게 짓누를 것이 틀림없다.
대통령이 아닌 여당의 총재로서 개혁작업을 이끌어 가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김 총재의 『이대로는 안된다』는 개혁의지를 이해하더라도 노 대통령이 밀알이 될 각오로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성과가 표로 나타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의 구호와 의지가 확신감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민자당부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민자당은 쇄신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3당합당의 여진은 아직도 여기저기서 연기를 뿜고 있고 김 총재의 「얼굴」과 민자당의 「몸체」는 따로 노는 예가 적지 않다. 「한지붕 세가족」을 어떻게 한마음으로 엮어내 「김영삼대통령」 만들기에 총력동원체제를 구축하느냐가 김 총재의 쉽지않은 숙제중 하나다.
이통문제에서 보여준 김 총재의 돌파력은 대국민 이미지제고에는 성공했으나 민정계 상당수에게 경악과 불안을 안겨주었다. 권력의 기득권과 단맛이 몸에 밴 골수여당 세력과 야당에서 잔뼈가 굵은 「투사」와의 체질적 괴리감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장악력으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민정계의 피해의식은 선거과정에서 갖가지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야당출신 여당총재에겐 밖으로부터 강한 개혁욕구와 내부기득권 계층의 현상유지 주장을 함께 수용해야 하는 남다른 고민이 있다. 총재취임수락문작성과 대선공약마련과정에서부터 개혁의 속도를 놓고 내부갈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울러 소수파로서 비판자·도전자의 역할만 해오다가 책임자·집권당 대통령후보로서 도전받는 입장이 됐다.
당장 자치단체장선거 문제로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가을정기국회 운영 등도 그의 눈앞에 닥친 시련이다. 이제 그의 막중한 책임감이 뒤따른다. 그의 장기로 꼽히는 과감한 결단력,돌파력이 어떻게 여당에 접목될 수 있을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김 총재는 이같은 여러가지 과제들을 소화해 대선에서 평가받게 돼있다. 집권당 후보로서의 프리미엄은 결코 이문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다.
김영삼총재가 책임있는 지도자로서 새로운 실험에서 성공할 것인지,그를 총재로 선택한 민자당이 자기변신의 중대한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해답이 빠르다.<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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