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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서 포클레인 몰고 싶다카데 퇴임해도 不義 그냥 못 볼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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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문을 밀고 들어서는데 머리 위로 물벼락이 쏟아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65)씨는 “날이 더우면 축사에 있는 사슴ㆍ오리가 애처로워 물을 뿌린다”며 멋쩍게 웃었다. 전날 만났을 때만 해도 말없이 악수로 인사를 대신했던 그는 “지난 4년간 대통령의 형으로 사는 게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굳게 다문 입을 천천히 열었다. 인터뷰는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의 건평씨 집에서 진행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이 걸린 건평씨 집 마루는 곳곳이 내려앉아 있었다. “왜 수리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뭐, 마음이 편해야 하지”라고 답했다. 사진=김선하 기자


-노 대통령 부부가 내년 퇴임 뒤 봉하마을로 돌아올 예정이시죠.
“전에 포클레인을 보면서 노 대통령이 ‘마, 나도 촌에 가 저런 거 하나 사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여기 오면 농촌생활에 상당히 심취할 것 같아.”
-형제가 함께 살게 되면 뭐가 제일 해보고 싶으세요.
“채소도 같이 가꿔 먹을 수 있을 것이고, 여행도 같이 갈 수 있을 것이고. 그런데 좀 서먹한 것이 형이 대통령이었으면 그냥 형님, 형님 부르면 되는데 동생이 대통령이라 말이지. 그래서 난 (노 대통령이) 여기 와서 지역 분들과 좌담회 같은 거 해도 좀체 잘 안 가요. 내 앉을 자리가 없는 거야. 동생 윗자리에 앉을 수도 없고, 동생 밑에 앉으려니 명색이 형이 그것도 그렇고.”
-마을 이름을 따서 ‘봉하대군(大君)’이란 별칭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대군이라 카는 소리는 참 듣기 싫어하지요. 역사가 바뀌었는데 무슨 대군…. 아름답게 들리진 않아요.”

-대통령이 귀향해 머물 집 공사가 한창이더군요.
“절대 비싼 외지 돌 가져다 쓰지 말라고 합디다. 전에도 그랬어요. 1976년에 우리 아버지 별세하시고, 90년대 들어 어머니 건강이 안 좋아지셨지. 그래 내가 살아 생전 두 분 고생한 거 생각해 산소를 꾸미려고 석물을 좀 샀어요. 98년에 어머니 별세하고 그걸 세우려 하니 동생이 ‘형님, 내가 국회의원 했고 법을 만드는 사람인데 이래 하시면 호화묘가 돼 안 됩니다’ 하더라고. 그래 그 아까운 걸 그냥 다 버리고…. 그런데 삼우제 지낸 뒤 내가 딱 두 개 남겨둔 걸 그냥 세워 버렸지. 그랬더니 다음에 지가 와서 보고 난리가 났지요. 형이 해놨으니 빼라 소리는 못 하고.”
-앞으로는 노 대통령이 뭘 하길 기대하세요.
“지금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역할을 하고 있거든. 어떤 대통령이든 퇴임 후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노 대통령은 누구보다 의욕이 강하니까. 또 불의는 그냥 못 보고…. 한치 소홀함 없이 잘하지 않겠나. 자기는 열린우리당이 전국당 깨지는 거,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팠을 긴데. 영ㆍ호남 지역감정 해소… 가능할진 몰라도 물러서진 않을 것 같아요. 지금 다들 뿔뿔이 제 갈 길 가고 있잖아요. 장관까지 지낸 사람들이 하는 것 보면 참….”
-동생이 대통령 되고 난 뒤 좋은 일이 많았나요, 손해가 많았나요.
“(한숨을 쉬며) 손해라…. 득 된 건 한 개도 없지. 처음 한 일년 동안은 고통스러웠어요. 정신도 멍하니, 뭐에 받힌 것처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내가 좀 ‘야물치지’ 못했지. 다시 돌아간다면 더 ‘야물치게’…. 전임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를 보고 나는 진짜 조심하고 염두에 뒀지요. 그런데 난데없이 우째 나한테 그런 사고가 생겨서….”
-거제 국립공원 내에 별장을 지으셨단 얘기가 있었죠.
“말 백 마디가 필요 없고 가서 한 번 보면 됩니다. 내가 포클레인으로 몇 달…, 아니 일년을 일했지. 내가 지금도 포클레인 삽으로 한글도 좋고, 영어도 좋고, 내 이름을 쓸 수 있어요. 그렇게 유자 밭을 만들고, 그거 관리하려고 집을 하나 지었는데 그걸 놓고 별장이란다. 고생만 했지요, 나무도 도둑 맞고.”
-고(故)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측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있었는데요.
“(다시 긴 한숨을 쉬며) 지금도 그걸 떠올리기조차 싫고,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몰아붙이는데 내가 죽겠더라고. 소주만 먹고… 밥도 못 먹는 거지요.”

-요즘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나요.
“많이 오지요. 관광객도 있고, 청탁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뭐가 억울하다는 사람도 많이 오고. 하지만 내가 공장 경비 자리 하나 봐주질 못해요. 이 얘긴 처음 하는데 사정이 딱한 사람들 오면 가끔 차비도 줘서 보내고 합니다.”
-얼마나 주시나요.
“뭐, 최고 5만원도 줘봤고. 제주도도 여기서 5만원 주면 가거든. 1만원 줄 때도 있고.”
-노 대통령께 서운한 건 없으세요.
“서운한 건… 없지요. 내가 부탁한 것도 없고. 혹 서운해도 내가 형이니까 감수해야 하는 거고. 가끔은 내가 형 이상으로 아버지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요.
“대통령에게 좀 힘을 실어 주고 격려해 주고 했으면 해요. (너무 몰아세우면) 그 피해는 노무현이 아니라 국민이 보게 됩니다. 그 좋은 머리 잘 활용하도록 격려해 주시면 다들 더 잘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김해 봉하마을=글·사진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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