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만 물건 그냥 버려(자,이제는…:2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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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앙일보 무질서 무책임 무관심 추방캠페인/양말 기워신던 때가 엊그제인데…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한국자원재생공사 지의환씨(38)는 하루에도 몇번씩 기가 질린다.
언뜻 보아 바로 구입한 새 것으로 보일만큼 멀쩡한 옷가지들이 쓰레기통에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단지에서 지씨가 수거하는 옷가지는 하루평균 40여벌. 그중에는 값비싼 유명 외국브랜드 양복도 상당수 있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남들이 주워 입지 못하게 일부러 칼이나 가위로 찢어서 내버리는 말짱한 옷도 3∼4벌꼴로 발견된다.
「과소비 쓰레기」는 의류뿐 아니다.
며칠 신지않은 구두와 흠집 하나없는 플래스틱 그릇,3분의 1도 쓰지 않은 노트 등 도저히 쓰레기로는 볼 수 없는 물건들이 하루평균 1백여점씩 수거된다.<관계기사 23면>
지씨는 『아무리 돈이 많다고 쓸만한 물건을 마구 버리는 것도 이해할 수 없거니와 성한 옷이나 구두를 힘들게 찢어서 버리는 이곳 주민의 심리상태는 더욱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이 아파트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국 곳곳 쓰레기통과 쓰레기처리장엔 충분히 쓸만한 물건들이 마구 버려지고 있다.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주민은 『일부 주민들이 쓸만한 가구나 가전제품을 유행에 뒤떨어지고 새로운 기능이 없는 구식이라는 이유로 버리고 있다』며 『극히 일부는 남이 사용하지 못하게 부수어 버리기도 한다』고 했다.
과연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부자」가 되었나. 설령 「부자」라고 해도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우리보다 몇배 잘 사는 나라에서도 낡은 가구를 대물려 쓰고 해진 옷을 기워입고 할머니의 웨딩드레스를 손녀가 자랑스레 입는다는데….<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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