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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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주 시어머니 생신을 맞아 서울 신림동에 있는 시댁에 온 가족들이 모처럼 모인 자리는 우리 꼬마들이 몰래 준비한 생신선물 때문에 온통 화제였다.
저녁식사 후 TV앞에 모였을 때 5,6학년 짜리 아들 둘이『할머니 오래 사세요』하며 호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낸 것이 조그마한 손 지갑과 향수케이스였다. 엄마에게까지 까맣게 숨긴 아이들의「모의」가 깜찍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어른들을 흐뭇하게 한 것은 그동안 몇 백 원씩 돼지저금통에 모은 돈으로 선물을 준비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에게 돼지저금통을 사준것은 몇 년 전 일이었다. 아버지 구두 닦는 일이며 두부심부름·집안청소 돕기 등을 꼬마들에게 시키고 매번 2백 원에서 5백 원씩 돈을 주기 시작하면서 헤프게 쓰지 말라고 함께 사주었다.
그 전에는 한 달에 몇 천 원씩 일정액의 용돈을 준 적이 있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규모가 있을리 없어 며칠만에 용돈이 바닥나 버리기 일쑤였다.
간단한 심부름이나 집안 일을 시킬 때마다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 주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나쁜점은 없을까하는 의문은 아직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아이들이 올바로 자라는데는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일해서 얻는 돈이기 때문에 쉽게 쓰지 않는다. 또 저금한 돈으로 시키지도 않은 선물을 할머니생신 때 준비한다든가 하는 마음씀씀이 또한 또래의 다른 어린이들보다 넓게 느껴지는 것이 과연 제 자식 잘나 보이게 마련인 엄마의 습성 탓만 일까.
요즘 부잣집에서 아이들 생일에 호텔뷔페를 찾는 것이 유행이라는 얘기도 들리고 10만 원 짜리 수표 한 장 내주고 백화점 가서 마음껏 사 쓰라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우리 집은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자식을 그렇게 키워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경기도 광명시하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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