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악...「비둘기 아빠」|행사 때마다「미아」발생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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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울 시청 앞 광장의 아침은 비둘기 떼의 비상과 함께 시작된다. 시청건물옥상에 둥지를 튼 1천2백 마리의 비둘기가『구구구…』합창을 하며「좋은 아침」을 여는 것이다.
서울시 환경녹지 국 공원과 소속 허증씨(52·기능직)는 20년째 이들 평화의 비둘기를 길러온「비둘기 아빠」다.
허씨가 비둘기와 인연을 맺은것은 서울어린이대공원 사육 사로 일하기 시작한72년부터 공원 내 비둘기·사슴·호랑이 등 동물을 기르는 것이 허씨의 임무였으나 주인을 알아보고 어깨·손등 등에 스스럼없이 날아들어 애교(?)를 부리는 비둘기가 유난히 사랑스러워 밤마다 비둘기만3∼4마리씩 물어 죽이는 야생 도둑고양이를 붙잡기 위해 일주일동안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다.
81년 시 본 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옥상의 비둘기사육을 전담하는 명실상부한「비둘기 아빠」가 됐다. 하루 한차례씩 아침(7시30분)마다 모이를 주고 상처가 나거나 범이 들면 모이에 약을 타 먹이고 새장을 청소·관리한다.
이밖에 허씨가 맡은 주임무는 각종 경축행사 때마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리는 일. 행사전날 비둘기를 한 마리씩 유인, 7백∼8백 마리를 집합시켜 놓고 「길을 잃지 말고 돌아 오라」고 마음속 훈시(?)를 내린 뒤 창공으로 날려보낸다.
그러나 행사 때마다 10∼20여 마리의「미아」가 발생, 애를 먹는다.
때문에 허씨는 1년에 세 차례씩 남산·한강고수부지종합운동장 등에서 비둘기를 날려 시청을 찾아오도록 하는 귀소훈련을 실시한다. 평균 귀소 율은98%.『5공 시절에는 대통령 연두순시를 앞두고 청와대 경호실측이 대통령이 순시하는 날에는 비둘기조차 얼씬거려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는 바람에 새장을 닫아놓고 비둘기의 외출을 감시한 적도 있지요.』
허씨는『20년째 비둘기를 길렀으니 이제는「비둘기 아빠」가 아니라「비둘기의 증조부」쯤 되는것이 아니냐』며 웃었다.
비둘기를 기르면서 가장 괴로운 일은「알 버리기」.비둘기는 2월부터 10월까지 3∼4회에 걸쳐 1회에 2개씩 알을 낳는데 이를 모두 부화시킬 경우 1년에 3만 마리 이상 늘어나 사육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한해 늘어나는 식구를 5백 마리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모진 짓」을 해야한다고 털어놓는다.
『비둘기는 1부1처 주의를 엄격히 지키고 저녁이면 외박 한번 하지 않고 꼭 집을 찾아오지요. 오순도순 정답게 모여 사는 모습이 사람보다 낫지요.』
서울시 기능직10급인 허씨의 봉급은 월평균 60만원선. 그러나 허씨는『박봉을 쪼개 쓰며 부인·자녀(1남1녀)들과 함께 비둘기처럼 오순도순 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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