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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후보지 탈 아파르 르포] 주민들 "미군 돕는 외국군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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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국 국방부가 파병 후보지로 밝힌 네곳 중 셋째로 기자는 19일 탈 아파르를 찾았다. 한국군에 대해, 18일 방문한 키르쿠크가 '환영', 카이야라가 '반대'라면 탈 아파르는 두 가지가 섞인 '환영+반대'쯤이 된다.

지난 9일 자살 폭탄테러로 60여명이 부상한 시내의 미군기지 주변. 구멍가게 주인 우마르는 "한국군이 오면 똑같은 공격을 당할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파편에 맞아 자신도 부상했지만 그는 테러를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그는 "점령세력에 대한 저항은 당연하다"며 "공격한 이들을 크게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많은 주민이 도시 한복판을 차지한 미군부대에 불만이 많다. 한 행인은 "서쪽의 탈 아파르성(城)과 동쪽의 공항(공군기지)에 주둔하면 됐지 왜 시내 중심에도 기지를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도시인구의 75%를 차지하는 아랍계인 이 청년은 "도시의 가장 큰 거리를 막아버리고 주변 건물을 기지로 사용하는 미군들의 행위에 모든 시민이 분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군이 이런 미군을 돕기 위해 온다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경고했다.

발길을 옮겨 미군부대 앞 구치소를 찾았다. 압둘 하디 두눈(31)소장은 "한국군이 이라크 경찰을 지원한다면 치안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대다수 주민은 외국군 파병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터키계 소수민족인 투르크멘인 연합사무실에서 만난 '탈 아파르지(紙)' 압둘 할림 편집국장은 '조건부 환영'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군대를 보내 점령자에게 협력하기보다는 구호단체나 기업들을 보내 지난 80년 동안 정부로부터 버려진 이 도시에 공장과 병원을 세워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그래도 만약 군대를 보내야 한다면 치안을 담당하는 이라크 경찰을 지원하라"고 충고했다.

탈 아파르는 이라크 북부 모술시(市)에서 서쪽으로 70여km 떨어져 있다. 모술은 사담 후세인의 두 아들이 숨어 있다 사살된 곳이다. 모술 근처에선 일본 외교관들과 한국의 오무전기 근로자들이 피살되기도 했다.

탈 아파르는 인구 23만명의 소도시다. 도시 한가운데는 마르완성(城)이 우뚝 솟아 있다. 이슬람시대 이전에 세워진 이 성은 아직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을 떠난 대상(隊商)들은 이란을 거쳐 모술과 이곳 탈 아파르를 지나 지중해와 터키로 향했다. 20세기 초까지 명맥을 유지한 오스만 투르크 당시에도 이곳은 이란 및 이라크와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연결하는 무역중심지였다. 중요한 무역로를 지키기 위해 오스만 제국은 총독을 보내 이곳을 직접 통치했다. 현재도 이곳에는 13개 부족으로 구성된 4만여명의 투르크멘인이 살고 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탈 아파르의 영화(榮華)도 사라졌다. 주민 대부분은 보리와 밀을 경작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후세인 정권이 방치했던 이곳에는 하수시설도 없다. 전기가 하루에 5시간도 들어오지 않는다. 만나는 주민마다 "물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서정민 중동특파원

<사진설명>
이라크 북부의 작은 도시 탈 아파르는 한때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했으나 사담 후세인 정권의 '홀대'로 가난한 도시로 전락했다. 상점 앞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침체된 도시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하다.[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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