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흑, 대참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4강전>

○ . 한상훈 초단 ● . 박영훈 9단

제5보(57~67)=백△가 슬며시 떨어졌을 때 검토실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뭐야. 그걸 움직여."

백△는 독수였다. 꽃구경 나온 한량처럼 방심에 젖어 있던 박영훈 9단도 정수리를 후려치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눈을 부릅뜬다. 그는 이 한 방이 통렬한 급소라는 것, 그래서 포위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 봤다. 중앙 석 점을 잡기 위해 투자한 게 얼마인가. 맛이 나쁘다는 것은 알았지만 당장 수가 난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는데 이게 웬 벼락인가.

56에 대해 '참고도' 흑 1로 막을 수는 없다. 백2가 일단 흑모양을 우그러뜨리는 급소여서 3으로 물러서야 한다. 그때 4, 6으로 깨끗이 관통당하고 만다.

57은 그나마 최선의 응수였다. 끊어져도 자체 삶이 가능하고 여차하면 A의 공격도 노릴 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은 59부터 줄줄 타고 나온다. 이미 포위는 물건너 갔다. 아니, 중앙 흑이 거꾸로 몰리고 있다. 엄청난 투자와 정성으로 백 석 점을 포위한 것은 이 돌이 요석 중의 요석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포위망은 엷지만 이 돌만 잡으면 흑은 저절로 강해질 수 있기에 악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하기도 싫은 비극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63으로 후퇴할 때 64도 좋은 수. 이 한 수로 백은 포위망을 벗어났고 선수마저 잡았다.

66도 기막힌 곳이다. 백대마를 안정시키면서 흑대마의 근거를 박탈하고 있다. 급전직하의 흐름이다. 눈 깜짝 할 새에 흑은 홍수에 휘말리듯 떠내려가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