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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빨래터'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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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2일 오후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 경매장에서 박수근의 작품이 역대 경매 최고가를 경신하는 순간이다. 경매 스크린에 45억2000만원이란 금액이 떠 있다.최승식 기자

22일 오후 4시 서울 평창동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의 1층 경매장. 300석의 좌석은 이미 동이 났고 앉지 못한 100여 명이 남은 공간을 빼곡히 채운 채 연단을 주시하고 있다. 이날 경매의 관심사는 '국민 화가' 박수근(1914~65)의 유화 '빨래터'가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액을 경신하느냐였다. 추정가는 35억~45억원.

오후 4시50분 34번째 경매 품목으로 '빨래터'가 나왔다. "33억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5000만원 단위로 들어갑니다." 중앙 연단에 선 경매사가 말을 끝맺자마자 응찰자의 번호가 적힌 동그란 팻말이 여기저기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33억5000 나왔습니다" "34억" "34억5000"…. 현장에서, 전화를 통해, 미리 써 놓은 봉투(서면응찰)까지 경합을 벌이며 액수는 숨차게 올라갔다.

"네, 서면(응찰) 40억 나왔습니다" "44억입니다. 이제부터는 2000만원씩 하겠습니다."

이때부터 전화 응찰자 두 명의 공방이 시작됐다. 한 손에 전화기를 귀에 댄 두 명의 대리인이 번갈아 팻말을 올렸다. "44억2000" "44억 4000"….

마침내 막바지가 왔다. "45억2000입니다. 더 없으십니까." "…" "땅! 45억2000만원에 전화응찰한 손님께 낙찰됐습니다." 경매봉 소리는 객석의 탄성과 박수소리에 바로 묻혀 버렸다.

3분30초-.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에 걸린 시간이다. 기존 경매 최고액은 3월 7일 K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61년 작 '시장의 사람들'(24.9×62.4㎝)이 기록한 25억원이었다.

'빨래터'는 50년대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37×72㎝ 크기(20호)의 유화. 가로로 긴 화면에 흰색과 분홍.노랑.민트색 등 다채로운 색상의 저고리를 입은 여인 6명이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옆모습을 담았다. 소장자는 미국에 사는 80대 미국인. 군 관련 사업을 하느라 한국에 체류할 당시 박수근에게 직접 받은 것을 50년간 간직해 왔다고 서울옥션은 전했다. 가난했던 박수근이 자신에게 물감과 캔버스를 지원한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했다고 한다. 소장자는 박수근이 매년 판화 등으로 직접 만들어 보내준 성탄절 카드 6점도 이번 경매에 내놨으며 일괄 2200만원에 낙찰됐다.

이날 경매에서는 박수근의 다른 유화 2점도 각각 5억2000만원, 4억1000만원에 낙찰돼 '국민 화가'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또 김환기(13~74)의 작품도 자신의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꽃과 항아리'(80호.57년작.사진)는 이날 18억원에 시작해 추정가(20억~30억원)를 넘겨 30억5000만원에 낙찰됐다.낙찰자가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경매 관례다.

◆박수근 작품 왜 인기 있나=윤철규 서울옥션 대표는 "박수근의 경우 갑자기 값이 올랐다기보다는 옛날부터 인기가 높고 비쌌다"면서 "다만 그동안 경매 같은 공개시장을 통해 거래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낙찰된 '빨래터'는 20호로, 지금까지 경매시장에서 나온 박수근의 작품 중 가장 크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연한 갈색 톤을 주조로 하는데 반해 '빨래터'는 파스텔톤의 다양한 색상이 화사하게 드러나 있다.

박수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우선 소재에서 한국의 서민적.향토적 이미지를 가장 잘 드러냈다. 기법도 독창적이다. 합판에 여러 가지 색을 8겹 정도 칠한 뒤 나이프로 긁어내 밑의 색이 올라오게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화강암 같은 우둘투둘한 질감은 여기서 나온다. 박 화백은 51세에 사망하는 바람에 남긴 작품도 적다. 국내에 100여 점, 미국을 중심으로 외국에 200여 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가방 속에 들어갈 수 있는 0호.1호짜리가 많다. 50년대 미군 매점에서 미국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는 작품을 팔았기 때문이다.

조현욱 기자 <poemlov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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