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하의자동차문화읽기] 불붙은 저가차 경쟁 … 현대차도 발상 전환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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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자유주의의 영향과 눈부신 IT기술의 발달로 세계 경제는 국경과 제약이 없는 무한경쟁에 빠져들고 있다. 시장에서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갈리고 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 자동차 업계도 부유층을 위한 고가차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는 한편 초저가차 개발에도 열을 올린다.

 대형 고급차는 대당 수익성이 좋고 브랜드 이미지도 높일 수 있어 모든 자동차 메이커들이 만들고 싶어한다. 고급차를 살 수 있는 부유층이 늘었기 때문이다. 부의 상징인 스포츠카 페라리는 희소성을 지키기 위해 연간 5000대로 생산을 제한하는 원칙을 지켜왔다. 최근 중국 등 신흥시장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지난해 생산대수를 20% 늘렸지만 차를 받으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 시장에서 대형차 판매 비중도 2002년 9%에서 올해 초 16%까지 급상승했다.

 그런 한편에선 저가 소형차에 대한 수요도 전 세계적으로 급증했다. 주로 중국ㆍ인도 같은 신흥시장에서 자동차 대중화시대가 시작됐고, 선진국에서도 저소득층 확대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고유가와 배출가스 규제, 도심 주차난 같은 요인도 소형차 수요 증가 요인이다. 대형차 위주였던 미국 역시 소형차의 판매 비중이 2001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올해는 15%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명 메이커의 신차도 소형차에 집중되고 있다. ‘바닥을 위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2004년 업계 최초로 600만원대 로간을 출시해 저가차 경쟁에 불을 붙인 르노-닛산그룹은 이미 로간 가격의 절반 수준에 팔 수 있는 초저가차 개발에 착수했음을 지난달 선언했다. 로간은 이미 과도하게 고급화된 경차 마티즈에 비해 각종 옵션은 없을지라도 기본 기능에 충실하고 가격경쟁력도 뛰어나다. 이렇게 단순히 값싼 차가 아니라 각종 튼실한 기본 성능과 안전, 멋진 디자인과 품질을 갖춘 ‘괜찮은’ 저가차를 만들어야 하기에 메이커들의 고민은 깊다.

 저가차의 수익성은 매우 낮다. 현재 연간 50만 대 규모로 루마니아에서 생산하는 로간의 대당 수익은 400달러 미만이다. BMWㆍ벤츠 같은 고급차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엄청난 판매대수가 확보되어야 목표 수익을 맞출 수 있는 구조다.
 고급차 시장과는 달리 저가차 시장은 차를 싸고 좋게 만드는 기술과 경쟁 메이커들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오래 버틸 수 있는 체력을 다진 몇몇 업체의 독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르노가 2009년까지 로간의 연간 생산규모를 100만 대로 늘릴 계획을 세운 것도 다른 메이커들이 진입하기 전에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도다. 도요타나 폴크스바겐 등도 저가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힘이 달리는 업체들은 다른 기업과 연합하거나 신흥시장 메이커와 공동 개발을 하는 등 원가절감에 진력한다.

그동안 품질 향상과 고급차 시장 진입에 주력했던 현대차그룹도 조금 늦었지만 최근 중국에서 500만원대 저가차를 개발한다고 한다. 현대차그룹의 장점인 ‘속도’를 살린다면 경쟁 메이커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화 강세 등 외부 환경은 그리 좋지 못하다. 게다가 내부의 고비용 구조로 개발이 순탄치 않다고 한다. 혼자 못하면 같이라도 해야 하니 대폭적인 원가절감을 위해 전략적 제휴 파트너를 찾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황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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