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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슈」문자 천년넘게 “생존”(지구촌 화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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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국 호남성 남부 여인들 끼리만 통용/시·노래·편지로 성 차별 비판/중국 첫 여성해방문학… 공산화된후 맥 끊겨/글자아는 83세 할머니 통해 사전편찬 등 준비/일제 침략당시 폭행당해 자살한 여인도 다뤄
중국 호남성 남부 장용지방에는 여자들끼리만 통용되는 문서 「누슈」가 1천여년전부터 전해지고 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전족 등으로 가족과 남편에게 예속돼 불우한 삶을 영위하던 여인들이 스스로 문자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슬픔과 기쁨을 기록해온 것이다.
누슈로 기록된 것은 그것이 시·노래·편지 등 어떤 형태를 띠더라도 모두 사실적이며 95%이상이 남녀의 불평등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여성들은 하루의 고된 노동이 끝나면 이웃끼리 함께 모여 누슈로 된 시와 노래를 읊어가며 자신들의 처지를 서로 위로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중국의 학자들은 누슈를 중국 최초의 여성해방문학으로 평가하고 있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누슈활동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일체 모른척해 여성들의 사회적 억압을 스스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주목되는 측면이다.
현존하는 누슈문학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송의 마지막 황제 후궁으로 장용지방 출신이었던 유슈가 고향 집에 보낸 편지다. 그녀는 『궁궐은 너무나 조용하고 붓을 들기도 전에 눈물부터 흐릅니다』고 썼고 장용지방 여인들은 이 내용을 구전민요로 불러왔다.
유슈는 부잣집 딸로 남동생이 가정교사로부터 한문을 배울때 어깨너머로 익힌 솜씨가 매우 빼어났다.
남동생이 과거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뒤 황제로부터 다른 가족에 대해 하문받자 자신보다 작문실력이 뛰어난 누나가 있다고 한 것이 인연이 돼 황제의 후궁으로 불려갔다.
다른 누슈의 기록에는 일제가 중국대륙을 침략했을때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여성들의 자살을 다룬 것도 있다.
누슈는 표의와 표음이 혼용된 문자로 호남성의 사투리에 기초하고 있다.
글자체는 한자의 전서·갑골문과 유사하나 원시적 형태여서 쉽게 익힐 수 있다는게 또 다른 장점이다.
발음체계는 기존 중국어와 같다.
누슈는 그러나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명맥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여성들에 대한 문자교육이 의무화되는 등 명목상 여성차별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편 일제 침략기간중 많은 누슈기록이 소실됐고 「산조우슈」 등 누슈로 기록된 시·수필문집은 여성들이 가보로 여겨 무덤속에 가져가는 바람에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뿐만 아니라 누슈의 문자와 기록들을 발굴·보존하려던 장용문화부관장 저우 슈오이가 지난 57년 중국 공산정권의 우파숙청 태풍에 밀려나면서 그가 작성한 보고서 및 6만 누슈단어 채록집이 불태워졌다. 현존하는 여성중 누슈를 쓸줄아는 유일한 여성은 현재 83세의 양 후안니 할머니.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저우 슈오이의 격려에 힘입어 지난 89년부터 누슈의 복원작업에 나섰다.
한편 그녀의 작업에 기초한 누슈문집이 곧 북경에서 발간될 예정이며 1천3백자 가량의 누슈어사전도 출간 준비중이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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