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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직업저런직장] 신약 개발 분야 실험실에서 '로또' 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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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이후 국내 제약업계에서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부문이 신약 개발이다. 그동안 복제약 개발에 주력해 온 국내 제약업체들이 엄청난 연구개발력으로 무장한 미국의 '거대 제약사(빅파마)'들의 공략에 맞서는 길은 신약 개발뿐이라는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덩달아 신약 개발과 관련된 직업의 위상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신약은 연구 개발자 혼자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이를 시장에 내놓으려면 임상시험과 지적재산권 획득 등 수많은 직업의 세계가 함께해야 한다. 신약 개발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이들의 세계를 알아봤다.

◆스톡옵션 매력 신약 개발자=디지탈바이오텍 김영호(44) 박사는 지난달 자체 개발한 진통제 신약 후보 물질 기술을 독일의 제약회사인 그루넨탈에 이전하는 계약을 했다. 이전 액수는 1200만 달러(약 112억원). 2005년 김 소장은 또 다른 신약 후보 물질을 5000만 달러(약 465억원)에 같은 독일 회사에 넘겼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5년간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2001년 귀국, 이 회사의 연구소장으로 영입된 김 박사는 이후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연구에 몰두했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탁월한 차세대 진통제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미국 남부의 사막 선인장에서 나오는 신경독소 물질의 구조를 조금씩 바꾸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서울대 약대 이지우 교수가 화학물질을 합성해주면 김 소장은 동물실험으로 이 물질의 약효를 확인하며 4년여를 보냈다. 다행히 성과를 냈지만, 이런 과정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날 수도 있다. 김 박사는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높은 위험에 높은 보상)' 직업"이라고 말했다. 연봉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대기업 연구원보다 적은 편이다. 그러나 스톡옵션과 인센티브 등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도전적인 사고와 창의력을 가진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김 박사는 덧붙였다.

왼쪽부터 김영호 박사, 이정규 이사, 이동기 변리사.

◆세계를 누비는 사업 개발자=실험실에서 나온 신약 후보 물질을 수익으로 연결하는 일은 사업 개발자가 맡는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이정규(39) 사업개발 담당 이사는 올 들어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냈다. 이 이사는 약효를 보인 후보 물질과 관련된 실험 데이터를 연구소장과 함께 만들어 미국의 빅파마 등에 기술이전을 타진하는 일을 한다. 이들이 관심을 보이면 가계약 후 계약 금액 및 상품화 이후의 수익 배분 등을 확정지은 뒤 본 계약서 작성으로 마무리한다. 빅파마들이 특정한 약효를 가진 물질을 원하면 이를 연구소에 알려 개발토록 하기도 한다.

신약 후보 물질은 일단 만들어지면 임상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야 정부 허가기관으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임상시험 과정에 많게는 수억 달러의 돈이 투입돼 자금이 부족한 회사는 임상시험 전단계 또는 중간단계에서 빅파마에 후보 물질을 파는 일이 허다하다. 임상시험이 많이 진행될수록 후보 물질의 값어치는 점점 올라간다. 이 이사는 "최근 들어 빅파마들이 제시하는 신약 후보 물질의 특허 사용계약 가격이 올라 임상시험에 진입한 경우 총 계약 금액이 3억 달러(약 28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LG화학에 입사한 이후 기술이전 업무를 주로 하다가 2000년 크리스탈지노믹스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그는 "외국에선 이공계 또는 의학박사들이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이수한 뒤 이 같은 업무를 주로 맡는다"며 "영어는 기본이고 기술과 시장을 두루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신약 개발은 변리사와 함께=세보특허법률사무소의 이동기(40) 대표변리사는 한.미 FTA 타결 이후 국내 바이오벤처 업계의 신약 개발 열기가 확실히 달아올랐음을 느낀단다. 올 1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에 사무실을 연 이 변리사는 "요즘 들어 신약 후보 물질과 관련된 지적재산권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신약 후보 물질의 특허출원은 언제쯤 하는 게 좋으냐' '특허 사용계약 권리 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싶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 변리사는 "아직까지는 정보기술(IT) 분야만큼 특허출원이 많지는 않다"며 "그러나 국내 제약회사들도 한.미 FTA가 발효되면 신약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신약 관련 특허출원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신약 후보 물질 관련 특허출원을 대행하는 데 건당 150만원 정도를 수임료로 받고 있다. 특허사용계약과 관련된 지적재산권 관련 상담에는 시간당 15만원 정도를 받는다.

변리사가 되려면 특허청이 매년 주관하는 1, 2차 변리사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요즘은 매년 200명 정도를 선발한다. 이 변리사는 "전문적인 전공지식과 법률지식을 모두 갖추고 예상치 못한 부분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이 요구된다"며 "무엇보다 고객의 입장에서 일을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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