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으로 가는 여야대결/「3자회담」 민주제의 배경과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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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화” 여론과 명분 동시 겨냥 민주/DJ의 2중성 부각에 초점 민자
여야간에 핑퐁처럼 오가던 정당대표회담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면서 정국이 가파른 길목으로 다가가고 있다.
여야간에 극적인 타협이 없는한 이번 임시국회는 민자당의 일방처리(상임위구성·지자제법 개정안)에 민주당의 극한 대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민주대표가 3일 오후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민자대표 및 자신간의 「1노2김회담」을 제안했지만 대치상태를 풀어주기는 커녕 더욱 꼬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대표측은 이 제안을 의심섞인 표현으로 거부했고,청와대는 아예 거들떠 보지 않으려해 여야간 피곤한 「면책성 떠넘기기」만 이어지고 있다.
김대중대표가 「1노2김」 회담을 내놓은 것은 『여론이 여당이 지자제 단체장선거를 않는 것도 잘못이나,야당도 대화를 하라는 것이 다수이기 때문』이라는 상황판단에 근거,여론악화 방지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민자당이 날치기처리를 않겠다는 사전보장을 해야 회담에 나서겠다는 한가지 논리만으로는 여론의 비판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며 국면전환을 위해 「양김회담」(김영삼대표제안) 「3당대표회담」(박준규국회의장제의) 등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내놓은 것이다.
말로는 「사전보장」같은 전제를 달지 않고 만나자는 것이라고 했지만,노 대통령을 끌고 들어갔다는 자체가 민자당으로선 받기 어려운 새 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김대중대표도 회담을 해봐야 결렬이 뻔하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 그럴바에야 3당대표회담이나 양김 회담에 무턱대고 나서 김영삼대표에게 「대화는 할만큼 했다」는 명분이나 제공해주는 자리에 왜 나가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노 대통령이 금년초부터 나에게 대화를 여러차례 요청해왔다』며 자신의 제의로 노 대통령과 김영삼대표간에 혼선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김대중대표의 속셈이 이렇다면 김영삼대표의 속셈 역시 김대중대표를 의심·불신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민자당은 처음부터 김대중대표의 대화제의를 시간벌기 작전으로 단정,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깔아뭉갤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어왔다.
양김회담은 거부하면서 1노2김 회담을 제안하는 김대중대표의 이중성과 당리당략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당면목표인 듯하다.
김영삼대표측은 현 대치상태에 충격을 줄 외부의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기전에 상위구성→본회의 지자제법 개정안 통과를 「결행」해야 한다고 마음을 굳힌듯 하다.
새로운 상황의 가능성이란 지자제단체장 선거연기와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판결과 영등포을 재검표(12일)에서 민자당이 불리한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다.
김영삼대표는 줄것(단체장선거 문제)이 없는 상태에서 김대중대표를 만나봤자 극한 저지의 명분만 보태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지자제문제는 끝난 얘기』라며 아예 김대중대표를 상대도 않고 민자당에 처리를 맡겨놓고 있다. 국민당은 정주영대표를 김대중대표가 뺀데 펄쩍뛰면서 민자당과 적절한 타협을 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제 양김,3당대표,1노2김회담 등은 밀고당기는 미사여구만 있지,조건이 맞지 않아 「제갈길」로 가고 있다.
그 길은 정면대치,본회의 격돌이며 민자당은 한편으로 국민여론과 민주당에 대한 「성의표시」를 며칠더 하고 주말 또는 내주초까지 목표관철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민주당은 4일 일간신문에 「올림픽 분위기를 이용해 민자당이 날치기 하려 한다」는 광고를 일제히 내고 일방강행에 대비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김영삼대표는 『할 것은 하고 모든 것을 대통령선거에서 심판받겠다』고 강조,어떤 경우에도 지자제법 개정안 통과까지 마칠 뜻을 거듭 시사하고 있다.
김대중대표에게 끌려가기보다 야당의 실력저지속에 강행처리하는 모습이 피곤한 쟁점을 소멸시킬뿐 아니라 야당도 함께 여론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는 「날치기」열병을 치른 뒤 자신의 총재직 이양을 계기로 국면전환을 위한 적극 공세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대표는 자신이 내놓은 1노2김회담 제안이 하루도 안돼 신선도가 떨어지자 4일 당청년수련회가 열리는 지리산으로 떠났다가 당초 일정을 앞당겨 이날 밤 서울로 돌아와 국회에서의 정면대결 준비를 할 예정이다.
김대중대표는 이미 민자당의 일방통과를 막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범국민서명운동 등 장외투쟁까지를 예고하고 있다.
이렇듯 양쪽의 대치분위기는 위험수위로 조금씩 다가서고 있고 회담의 가능성은 어느쪽도 크게 기대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대중대표가 김영삼대표의 양김회담 제의를 덜컥 받기 곤란하니까 「1노2김회담」이란 「징검다리」를 고려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측에서 김영삼대표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든지,회담의 의제를 지자제에 국한하지 않고 정국전반으로 확대하면 양김회담이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희망적 관측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자,민주당이 회담의 가능성보다는 책임회피에 더 비중을 두고 있고 양김의 오랜 대결 스타일상 전격적인 회담성사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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