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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감시하랬더니 제 몸집 불린 예산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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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기획예산처 직원들 사이에선 '인사'가 유행이다. 부쩍 낯선 얼굴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공공기관운영법(이하 공공법) 시행 등에 따라 올 들어서만 인원이 75명(21%)이나 늘었다. 변호사.공인회계사 10여 명이 특채됐으며 비서.운전기사 등도 덩달아 늘었다. 사람이 늘면서 사무실도 커졌다. 서울 반포로 청사는 방이 부족해 서울지방조달청이 쓰던 방 4개를 추가로 '접수'했다. 이런 식으로 기획예산처는 노무현 정부 4년간 51%나 인원을 늘렸다.

공공법에 따라 공기업을 감시하려면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게 예산처의 얘기지만, 기획 부처의 인원 증가로는 과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그렇게 늘어난 인원으로도 '이과수 감사 외유' 같은 '구멍'을 제대로 감시해내지 못했다. '공기업 감시하랬더니 제 몸집만 불려놨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 제 몸집만 키운 예산처=20일 법제처에 따르면 예산처 정원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2002년 말) 291명에서 5월 현재 438명으로 50.5%가 늘었다. 일부 위원회를 제외하면 중앙 행정부처 중 검사 인원을 대폭 늘린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이어 2위다. 같은 기간 국내 취업자 수가 6.1%(135만 명) 늘어난 데 그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예산처의 '몸집 불리기'는 현 정부 들어 굵직굵직한 각종 비전을 기획.집행하면서 시작됐다. 정부 정책이 국가균형발전에 미치는 기여도를 평가한다며 '균형발전영향평가제'를 만들면서 이를 담당할 균형발전재정기획관 자리를 신설하고, 정부 예산으로 사회서비스 사업을 출범시키면서 '사회서비스 향상 기획단장' 자리를 만드는 식이다.

이두원 연세대 교수는 "독일.프랑스 등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정부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데 우리는 완전히 반대"라며 "현 정부 초기에 '손.발 되는 공무원 위주로 늘리겠다'는 약속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예산권 무기로 막강 파워=예산처는 현 정부 들어 최고위층의 신뢰를 바탕으로 인사 때마다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예산처 장관 출신인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 김영주 산자부 장관, 임상규 국무조정실장, 변재진 보건복지부 차관, 이영근 청렴위 정책기획실장, 이인식 여성부 정책홍보관리실장 등이 모두 예산처 출신이다.

최근에는 예산처 출신이 행자부의 전유물이었던 광역 자치단체의 부시장이나 부지사로 진출하는 일도 잦다. 현 정부에선 예산처의 몸집 불리기를 견제할 세력이 사실상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익명을 요구한 행자부 관계자는 "예산을 쥐고 있는 부서가 증원을 요청하면 행자부로서도 제동을 걸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권혜수 한성대 교수는 "과거 예산권을 쥔 재정경제원이 무소불위의 파워로 부작용이 커지자 DJ 정권 때 예산처를 떼어냈다"며 "최근 예산처가 예산권을 무기로 조직을 늘려나가는 것은 과거 재정경제원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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