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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수비 한 해 1000억 넘는데…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잠깐만요.” “왜 도망가세요.” 아무리 불러도 대꾸 없이 공무원 한 명이 무작정 달아난다, 방송카메라를 피해서. 공무원이 “에이 씨”하더니 끌고가던 골프 카트까지 팽개치고 도망친다. 평일의 미국 미주리주 골프장에서 벌어진 방송카메라와 공무원 간의 민망한 추격전이다.

공직사회가 ‘모럴 해저드’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싶었나 보다. 공기업 ‘낙하산 감사’들의 남미 이과수 폭포 혁신여행, 서울지역 구청장 7명의 남미 외유, 이 와중에 벌어진 골프장 활극. 모두 해외연수와 해외출장이 모럴 해저드의 출구였다.

공직사회엔 남다른 특혜가 있다. 바로 ‘국외훈련’ 명목으로 실시되는 해외 장기연수다. 국ㆍ과장급은 1년~1년6개월, 4~7급은 2년~2년6개월로 민간보다 길다. 학자금ㆍ항공료ㆍ체재비에 월급을 그대로 받는다. 카메라를 만나자 줄행랑을 놓은 공무원이 바로 이 국외훈련자였다. 이런 사람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중앙부처만 지난해 310명에서 올해 360명으로 증가했다. 관련 예산도 2006년 255억원에서 272억원으로 커졌다.

중앙인사위원회가 적시한 국외훈련의 명분은 이렇다. 국제전문인력 양성, 정보화ㆍ전문화 사회에 대처할 능동적 대응능력 제고, 행정발전을 위한 선진 지식ㆍ정보 및 제도의 체계적 연구ㆍ도입…. 좋은 말들은 다 들어가 있으나 골프장에서 할 일인가.

그러나 중앙인사위는 당당하다. 김홍갑 인력개발국장은 “일부 편향된 시각으로 국외훈련제도의 성과를 폄하하고 확대 해석해… 다수의 국외훈련 공무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나아가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한미 FTA 협상단의 분과장 26명이 국외훈련자 출신”이라며 “해외에서 익힌 어학능력과 전문지식, 협상능력이 자양분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실련 정부개혁위원장인 한성대 권해수 교수는 “무조건 반박하고, 무조건 잘했다고 우기는 게 현 정부 공무원들의 특징인 것 같다”고 혀를 찼다. 과연 인사위의 주장대로 국외훈련에 대한 비판이 왜곡ㆍ폄하일까. 초대 인사위원장 출신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마저 “공부보다 딴 생각들을 많이 하고 지내더라”고 말하는 실정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미 2007년 예산안 심의 때 국외훈련과 관련해 ▶직무훈련보다 주로 학위 과정으로 운영되며 ▶영어권 비율이 70%가 넘게 편중돼 있는 데다 ▶국외훈련을 마친 뒤 의무복무기간(연수기간의 1배)을 채우지 않고 사직하는 인원이 매년 발생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실제 2003~2005년 해외 학위를 따온 재경부ㆍ교육부ㆍ문화부ㆍ국세청 등의 공무원 16명이 의무복무기간을 어기고 김&장, 율촌 같은 로펌이나 미국 증권회사, 코오롱, 삼성생명, 변리사사무소, 서울대ㆍ경희대ㆍ서울시립대ㆍ미국 대학에 취업했다. 인터넷엔 “내가 왜 땀 흘려 번 돈으로 공무원 월급 주는 것도 모자라 골프비ㆍ개인 유학비까지 대야 하나”라는 개탄이 나온다.

장기 국외훈련보다 쉽게 떠날 수 있는 단기 해외출장엔 부정의 요소까지 깃들어 있다. 서울 동대문구청은 민간업체와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부구청장 등의 독일ㆍ미국 여행비용 4800여만원을 끼워넣었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행정자치부가 파악한 지방공무원 해외여행 경비는 2004년 870억원, 지방의회는 72억원이었다. 장기 국외훈련 비용을 감안하면 공직사회 장ㆍ단기 해외 연수비용은 최소 1000억원이 훌쩍 넘는다. 중앙정부의 산하기관이나 공기업 해외출장을 합치면 낭비되는 돈은 규모를 추산하기조차 어렵다. 나랏돈을 쓰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는 공직자들에게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의 일침을 전하고 싶다.

“골프? 여행? 내가 미국에서 만난 일본 공무원들은 그 나라 수퍼마켓 물품가격까지 샅샅이 조사해 본국에 정보보고하면서 살더라.”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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